"불법, 또 불법" 정부 외면 속에 죽어가는 '코리안 드림'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고용허가제에 대한 폐지를 촉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연합뉴스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고용허가제에 대한 폐지를 촉구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 연합뉴스

정부의 외면 속에 외국인 노동자가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22일 파주시 조리읍의 한 식품공장 앞 컨테이너에서 불이 나 이곳에서 숙식하던 인도 국적 노동자 A씨(46)가 숨졌다. 화재를 발견한 동료들이 컨테이너 쇠창살을 뜯어내려 했지만 힘을 쓰지 못했고, A씨는 끝내 사망했다.

난민 신청을 했던 그는 고국에 남은 가족을 위해 지난 2019년부터 해당 공장에서 일했다. 그러나 정부는 인도의 경우 이주노동자를 들여오는 고용허가제 대상 국가가 아닌 탓에 책임질 게 없다는 입장이다. A씨는 그야말로 죽음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셈이다.

문제의 컨테이너는 지자체에 신고되지 않은 불법 가설건축물이었다. 그에 대한 고용마저 제도권 밖의 일이라 어느 누구도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A씨가 숨진 다음날에도 이주노동자 숙소로 쓰이던 김포시의 한 컨테이너에 불이 나 소동이 벌어졌다.

이렇듯 이주노동자는 죽음으로 내모는 숙소를 제공받아도 사업장을 스스로 옮길 수 없다. 외국인고용법에 따른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가 핵심적인 근로조건 위반이나 인격적 모멸 행위 등을 당한 경우에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도록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주노동단체들은 ‘현대판 노예제’와 같은 고용허가제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지만,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법조계와 노동계에선 부실한 법리로 사업장 변경 제한 폐지 시 고용시장에 미칠 영향만 고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은정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은 “지난해 70%에 달하는 이주노동자가 가설건축물에 살았는데 과연 개선됐을지 의문”이라며 “기본권을 제약하는 고용허가제는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이번 대선에서도 이주노동자를 위한 공약은 없었다”고 꼬집었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최근 고용허가제에 대해 ‘입법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오로지 고용시장에 대한 파급 우려를 이유로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을 일방적으로 침해해서도 안되기 때문에 국회 차원에서 입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승태 조사관은 보고서를 통해 “헌재의 합헌 의견이 무조건적 수용으로 읽혀선 안 된다”며 “현실적인 파급력과 정책적인 측면에서 이 문제는 이해당사자를 조정하고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입법자가 나서야 할 영역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부당한 처우를 당하거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도록 지난해 제도를 개편했다”며 “입법이나 법령 제·개정은 국회 소관이라 부처 차원에서 답변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계속해서 개선책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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