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내일 '순수'로 그렸다
보통 ‘풍류’라는 말 다음엔 ‘해학’이 오는 편이지만, 이번엔 독특하게 ‘템포’가 왔다. 경기도무용단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경기아트센터에서 선보인 공연 <순수: 더 클래식>에서 우리 고유의 춤과 서양의 클래식 악기를 엮어 각자의 풍류와 템포를 나눈 것.
어쩌면 조금 어색할 것 같은 동·서양의 실험적 조우, 과연 관객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하모니가 울려퍼졌을까.
전통예술 기반 공연 <순수>는 ▲프롤로그(강강술래) ▲순수의 땅(태평무, 한량무, 부채산조) ▲생명의 태동(진도북춤, 장구춤) ▲회한의 시간(신칼대신무, 살풀이, 지전춤) ▲에필로그(학춤) 등 5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약 3년여간 일상을 뒤흔든 코로나19 시대의 엔데믹을 기다리며 ‘순수했던 그때’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품고 있다. 오늘날 미지의 세계를 달리며 분열과 대립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생명력이 넘실거렸던 과거를 그리며 신에게 보답하자는 뜻이 담겼다.
<순수>는 경기도무용단이 10종류의 춤사위를 수놓을 때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애절함을 더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두 단체가 손을 맞잡은 건 경기아트센터 설립 이래 이번이 최초다.
고리타분할 것만 같다면 오산이다. 인터미션 없이 2시간여 공연이 펼쳐지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 꽃잎을 겹겹이 싼 것 같은 화려한 의상과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소품, 시시각각 변화하는 조명이 무대를 함께 채운다.
무용수의 몸짓에 시선을 빼앗겨 혹여 오케스트라가 묻히진 않을까 하는 우려 또한 ‘사서 하는 걱정’이었다. 100점 만점의 공연을 120점으로 끌어올린 주역 중 하나는 정나라 전 경기필 부지휘자(현 공주시 충남교향악단 상임지휘자)다. 현재 경기필 지휘자인 마시모 자네티는 해외에 있고, 부지휘자는 공석인 상황에서 <순수>가 걱정된 것도 사실인데 정나라 지휘자의 손짓을 보며 괜한 걱정임을 깨달았다.
특히 피날레 ‘학춤’에서 희망찬 내일을 응원하는 무용단의 마음이 경기필의 뜨거운 열정과 유려한 연주로 표현돼 관객들도 큰 호응을 쏟아냈다.
이 외에도 남성군무 ‘한량무’와 여성군무 ‘장구춤’ 등 숨 가쁘게 장단을 두드리고 이리저리 대형을 이동하며 삶의 태동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장면이 여럿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는 비탈리의 샤콘느에 맞춰 ‘살풀이’가 벌어질 땐 서늘하고 슬픈 한(恨)이 보여 <올드보이>나 <마더> 같은 박찬욱 감독의 수많은 영화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늘거리는 명주천 아래로 외로이 춤추는 무용수와 비장하게 울리는 음이 인상적이었다.
경기도무용단이 지난해 선보인 <경합(競合): The Battle>의 경우 지난 15일 OTT 플랫폼 ‘왓챠’에 공개된 바 있다. 오프라인 무대 위 <순수>는 당분간 막을 내리지만, 온라인상 새로운 무대를 찾아 다시금 한국의 정서를 세계 무대 위로 올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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