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나도 피해를 보는 ‘마이너스(-) 섬’ 게임을 하는 사람을 경제학에서는 멍청하다(stupid)고 한다. 금융위기 이후 표면화된 미·중 경제전쟁에서 시작된 탈세계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되돌릴 수 없는 흐름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냉전 해체가 가져온 세계화란 다름 아닌 경제의 전지구적 통합이었고, 인터넷 및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인류 사회는 하나로 통합된 초연결 시대로 진입했다. 그런 점에서 탈세계화란 이미 깊숙이 연결되고 통합된 세계를 (인공적으로) 파편화시키겠다는 것이고, 그 충격은 (공급망을 중심으로 한) 경제생태계의 와해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최근 경제에 드리우는 먹구름은 바로 그 충격의 산물이다. 세계경제는 ‘공급망 충격’발 인플레이션으로 (인플레이션 억제에 큰 효과가 없는) 긴축을 강요받고 있고, 그 결과 자기파멸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금리를 인상하고 통화량을 회수한다고 (전쟁이 폭등시킨) 유가나 곡물이나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다는 보장이 있는가?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인플레와 경기침체가 같이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나 (경상수지가 취약한) 개도국이나 신흥국의 외환위기 가능성은 커질 것이고, 그 결과 정치적 불안정도 심화할 수밖에 없다.
사실, 하나로 통합된 초연결 세계는 상호의존의 심화를 의미하고, 그에 따라 협력과 연대는 글로벌 공공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계가 협력보다 대립이 심화하는 근본적 이유는 ‘20세기 패권주의 세계관’과 ‘21세기 통합된 초연결 세계’의 불일치(mismatch) 때문이다. 특히, 패권주의 시대를 주도했던 미국과 서유럽과 일본 등은 (금융위기와 팬데믹 등으로) 지난 20년간 경제력이 쇠퇴하면서 20세기식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예를 들어, 미국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기 시작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중국의 GDP는 미국의 35%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76%까지 추격했다. 격차 축소는 중국의 고속성장도 한몫을 했지만, 21세기 이후 미국의 성장 둔화도 이바지했다.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90년대 3.3%에서 2001~2007년은 2.5%, 2008~2021년은 1.6%로 하락해왔다. 특히 노동생산성은 1990년대부터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연평균 2.2%로 증가했으나 금융위기 이후에는 1.5%로 하락했다. 원인은 대공황에 견주는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도 미국 사회는 금융위기의 최대 요인으로 지적되는 불평등 해소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엘리트층이 세금 부담의 증가를 통해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지 않는 한) 불평등 해소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일반정부 부채(D2) 기준으로 GDP 대비 132.6%나 되는 상황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재정 투입은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국채 이자 부담으로 금리의 빠른 인상을 포함한 통화정책 정상화도 쉽지 않다. 유럽 경제도 (독일 정도를 제외하고 북유럽국조차) 달러 기준으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며 20년간 전쟁을 했음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야반도주(?)하듯이 철수한 미국이 (상당한 비용 지불 없이 유럽과 일본 등의 도움만으로) 중국과 러시아 등을 제압할 수 있겠는가? 바이든이 트럼프식의 대중 경제 보복을 승계(?)하고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시도하지만,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난해 중국의 상품 수출 증가율은 세계 평균 10.8%를 크게 추월한 약 30%에 달했고, 중국이 유치한 해외직접투자(FDI)도 전년보다 32% 늘어난 3천340억 달러로 중국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뒤로 최대치를 기록했고, 중국에서 사업하는 많은 미국 기업들은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처럼 대중 압박도 버거운 상태에서 푸틴 정권의 와해를 시도하고 있지만,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 원유 수입국인 인도가 비협조적이다. 게다가 미국은 사실상 세계 경제의 공공재인 달러결제시스템(SWIFT)을 무기화함으로써 달러 의존 축소의 가속화라는 부메랑을 맞이할 것이다.
이처럼 다원화된 세계는 국가 간 협력을 절대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시대착오적인 패권주의 세계관이 글로벌 경제생태계를 파편화시키며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로 통합된 초연결 세계에서 탈세계화는 자해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통화가치의 하락으로 이중 충격을 받는) 신흥국이, 그리고 한 국가 내에서도 저소득층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기에 탈세계화를 멈추지 않는 한 인류 공동체는 파편화되며 각자도생의 길로 치달을 것이다. (한편으로 자원이 없고 수출 의존이 높아 타격이 클 수밖에 없고, 다른 한편 팬데믹이라는 지구적 위기 상황에서 국제 연대와 협력을 주도해왔던) 한국은 국제정책 협력이라는 소프트파워 리더십을 발휘해 탈세계화 충격을 최소화시켜야만 한다. 윤석열 정부의 실력에 대한민국의 명운이 달려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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