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에 대법원은 자녀가 어머니를 따라 성과 본관을 바꾼다면 어머니의 종친회 가입도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혹 양성평등을 외면하거나 이 문제에 관심이 없어 딸은 종친회에 가입할 수 없다고 알던 사람들도 한번 주목했으면 한다. 이제 확실히 종친회도 부계혈족의 단체가 아니게 됐다. 하지만 종친회 구성원들의 대부분인 60대 이상 남성 임원들과 회원들도 충격이 크지 않고, 2005년 호주제 폐지 때의 일부 선배들처럼 개탄하지도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오히려 종친회가 의도와 다른 구태의 이미지를 벗는 계기가 되리라 전망하지 않을까 한다.
이미 2005년에 우리는 13일의 판결을 예비했다. 당시에 논란이 없지 않았으나 여성단체들의 주장을 배척하지 않고 개인의 존엄성과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헌법정신에 의거하여 뒤늦게나마 기존 호적법을 가족관계등록법으로 개정하기에 동의했던 것이다. 호주에서 개인으로 작성 기준을 변경했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게 했으며, 필요에 따라 입양과 혼인 등 관계증명을 따로 제공받을 수도 있게 했다. 그래서 이 판결이 이슈가 되는 건, 애초의 부계 성과 본관을 어머니 쪽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종친회 가입까지 시도하였으며, 지난 개정을 포함해 해당 종친회가 두루 검토한 끝에 가입을 사절하자, 종원 자격을 부여해달라며 그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한 이웃이 우리의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현실화는,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그리 낯설지 않다. 조선 후기 이후에는 이행이 축소되었지만 부모의 유산 분배에서 자녀 구분 없는 균등이 원칙이었고, 자녀가 여러 제사를 분담하거나 특정 제사는 윤번으로 담당하기도 했다. 또 그 원칙에 따라 ‘외손봉사(外孫奉祀)’를 인정했던 것이다. 이번 판결과 외손봉사는 우선 보기에 다르다고 하겠지만 권리와 의무 승계의 양성평등이란 본질은 동일하다. 그러고 보니 종친회란 결국 세대를 이은 한 가정의 확대가 아닌가. 공동 조상의 유업을 계승하고 돈목을 도모한다는 취지도 동일하다. 21세기 현재에도 외손봉사 전통을 잇는 유명 무명 가문들이 산재한다. 여전히 부계 선조의 묘소처럼 수묘하고 제사를 봉행하며, 선대 외가의 천선사업에 부조하기도 한다. 가문의 이런 전통을 유래한 당시 사정을 가문의식의 한 정체성으로 유지하며 모계를 존중하는 정서를 지피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 판결을 외손봉사와 겹쳐 보며 환영한다. 우리 시대에도 다시 이렇게 가문의 모계도 조명하면서 아직 미진한 양성평등에 작으나마 이벤트가 되었으면 한다. 2002년부터 도산서원 상덕사의 향사에 여성이 참여할 수 있고, 이후 퇴계의 기제(忌祭)에도 여성의 참사가 가능하다. 부인의 내조 없이 남편의 공업(功業)이 없다는 견지에서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대리하여 2018년에 우당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1889-1979) 여사와 석주 이상룡의 손자 이병화의 부인 허은(1907-1997) 여사에게, 2019년에는 석주의 부인 김우락(1854-1933) 여사에게 신산했던 내조 그 자체를 구국의 공적으로 인정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는 사실도 이 기회에 한번 상기했으면 한다.
김승종 시인•前 연성대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