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가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글을 읽는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곰곰이 들여다 보면 옷매무새가 남다르다. 여염집 글쟁이는 아니다. 누가 눙을 쳐도 거들떠 보지도 않을 태세다.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실루엣이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겼던 어진 군주였다. 병자호란 이후 서양문물 수입이 본격화됐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를 통치했던 군주가 아니라는 뜻이다.
▶수원 남문시장 입구에는 흥미로운 조형물이 있다. 술상 앞에 앉아 있는 정조대왕의 동상이 외지인들을 맞이하고 있어서다. ‘불취무귀(不醉無歸)’라는 문구도 적혀 있다. ‘취하지 않으면 집에 못 간다’는 뜻이다. 백성들이 술에 취해 흥겨울 정도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정조대왕은 조선 후기 문화부흥과 부국강병 등에도 힘썼다. 18세기 격변의 정세 속에서 균형 잡힌 외교정책을 시행한 임금으로도 평가 받는다. 아름다움만이 적을 물리칠 수 있다는 근사한 말씀도 남겼다. 그래서일까. 그가 남긴 수원 화성 자태도 곱다.
▶해군이 8천100t급 차세대 이지스구축함 명칭을 ‘정조대왕함’으로 결정했다. 해군은 “구축함의 명칭은 국민으로부터 영웅으로 추앙받는 역사적 인물과 호국 인물 등을 선정해 제정한다”고 설명했다.
▶이지스(Aegis)라는 명칭은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가 그의 딸 아테나에게 준 방패에서 따왔다. 이지스 시스템이 장착된 구축함이 이지스함이다. 이지스 시스템은 방공중심의 해상전투·무기체계다. 첫 이지스 구축함은 1983년 미국의 타이콘데로가호다.
▶인도시기는 2024년이다. ‘정조대왕함’이 취역하면 ‘세종대왕함’ 등에 이어 네번째다.
▶북한 탄도미사일 요격용 장거리 함대공유도탄도 갖춘다. 조선후기 개혁군주의 묘호(廟號)로 명명된 구축함이 늠름하게 우리 바다를 지킬 날도 멀지 않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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