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 미국 독립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였다. 메사추세츠주 찰스타운에서 일어났던 벙커힐 전투가 미국 근대 경제사의 흐름을 바꿨다. 전투를 화두로 꺼낸 까닭이다. 당시 미국 민병대는 보스턴 항구를 점거하고 있던 영국군을 공격했다. 민병대는 450명이 숨졌지만, 영국군 사상자는 1천54명이었다.
▶헨리 클린턴 영국군 장군은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 같은 승리가 반복된다면 영국의 신대륙 지배는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보급 등이 충분했다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제2차 대륙회의에서 대륙폐(Continental Currency) 발행안 의결로 이어졌다. 1775년 오늘이었다. 벙커힐 전투 사흘 후였다.
▶대륙폐는 전쟁비용 지원용 채권이었지만, 실제로는 불태환 지폐였다. 주(州)들은 대륙폐 발행 자체에 의구심을 품었다. 대륙회의가 단순한 합의체를 넘어 주(州)보다 상위의 연방정부로 발전할 가능성을 경계한 것이다. 세금 부담도 급증했다. 독립전쟁 이전 부과된 세금은 1인당 연평균 0.016 파운드로 연간 소득의 0.5% 정도였다. 독립 이후 연방정부가 매긴 세금은 영국이 식민지 시절 부과했던 금액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발행액은 눈덩이처럼 불었다. 1차분 200만 달러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연말까지 2차례에 걸쳐 600만달러가 추가로 발행됐다. 결국 1779년까지 2억4천155만달러 어치 대륙폐가 뿌려졌다. 영국군도 위조지폐를 마구 찍어대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미국은 대륙폐 남발 폐해를 톡톡히 치렀다. 결국 대륙의회는 대륙폐를 폐지했다. 1779년이었다.
▶연방정부가 화폐주조권을 갖지 못한 건 대륙폐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이었다. 의미있는 반전이었다. 대륙폐는 과연 ‘과거 완료형’일까. 대륙폐는 오늘날의 달러와 구조적으로 다를 게 없다. 불태환 지폐라는 점이 그렇고, 발행이 남발된다는 점도 그랬다.
▶또 있다. 대륙폐가 건국 초기 연방정부 권한을 강화한 것처럼, 달러도 세계 무역을 볼모로 미국의 글로벌 지배를 보장하는 도구가 됐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가 대륙폐 발행 의결 전으로 회귀하는 건 아닐지 걱정되는 건 괜한 기우(杞憂)일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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