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전염되는 자살

‘베르테르 효과’라는 게 있다. 연예인 등 유명인이나 자신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 여겨 모방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이다. 18세기 괴테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가 권총 자살을 하면서 책을 읽은 독자 중 수십명이 베르테르처럼 자살을 한데서 유래됐다. 실제 1962년 배우 마릴린 먼로가 자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이후 같은 달에만 300여명이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1977년 록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망, 2003년 홍콩 배우 장국영의 투신 자살 후에도 일반인의 모방 자살이 잇따랐다.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같은 인간이기에 비슷한 갈등과 고통을 갖고 있다. 유명인이 자신과 비슷한 문제로 갈등하고 자살하면, 자신 또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 같은 방법을 택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부른다. 자살은 전염된다. 보건복지부가 며칠전 발표한 ‘2015~2021년 심리부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심리부검 대상자 10명 중 4명(42.8%)은 자살 사건으로 가족 또는 친구·지인을 잃은 유족이었다. 심리부검은 자살 유족의 진술과 기록을 통해 자살 원인을 추정·검증하는 것이다. 조사 결과 자살 유족의 80% 이상이 우울증을 경험했고, 60%는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다.

2020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만3천195명에 달했다. 학계는 가장 가까운 4인 가족을 기준으로 매년 7만명 이상의 자살 유족이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해외연구에 따르면 자살 유족의 사망 위험은 남성 8.3배, 여성 9배로 높다. 특히 자살자가 남편인 경우 16배, 아내인 경우 46배 증가한다. 국내연구에서도 유족의 자살계획 경험이 일반인보다 8.6배 높았다.

자살한 사람이 주변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친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강하게, 더 오래 받는다. 경제적 문제나 건강악화, 실패 또는 상실 등 취약한 상황이면 영향이 더 크다. 한 사람의 자살을 가볍게 봐선 안된다. 개인문제가 아닌 사회문제로 인식, 자살 사망자 주변인에 대한 심리 상담·치료 등 사후관리가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