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기 힘든 범죄... 아동학대, 선제적 발굴 힘써야”
꽃 같은 아이들이 학대에 스러지고 있다. 어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지만, 어떤 아이는 가장 의지해야 할 부모에게서 ‘어둠’을 경험한다. 아동학대는 학대 가해자와 보호자가 같다는 점에서 외부로 드러나기 힘들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이 우리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본보는 창간 34주년을 맞아 40년 가까이 학계와 현장에서 아동복지를 연구한 정선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에게 아동학대와 부모의 역할, 정부의 대책을 물었다.
Q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
A 지난해 5월 화성에선 양부 A씨(37)의 학대에 시달리다 2세 입양 아동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인이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7개월 만에 일어난 비극이라 더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경기도에선 총 9천192건의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아동학대 사례가 수면 아래에 가려져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정 내 아동학대는 구조적으로 목격자나 직접 피해를 당한 아동이 신고를 하지 않으면 드러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Q 아동학대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A 우리나라 아동학대 사건의 근본적 원인은 ‘아이 키우기 힘든 환경’이 조성된 것이 가장 크다. 아동학대에는 복합적 원인이 있지만 대다수 부모들은 경제적 문제 등으로 한 아이조차 온전히 양육할 수 없고, 이 때문에 가정에서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심지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산층도 자신들 힘으로 양육이 힘들어 부모 세대에게 도움받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
또 국가가 아동이 행복한 사회를 위해 무상보육 같은 다양한 캐치프래이즈를 내세웠지만, 이는 되레 부모들의 책임감만 떨어뜨렸다고 생각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시행된 무상보육이나 국가가 아이를 ‘대신 키워준다’는 문구는 역설적으로 부모들의 모성애가 형성되는 과정을 사라지게 만드는 방아쇠가 됐다고 본다.
Q 아동학대는 가해자와 보호자가 같아 다른 범죄와 달리 밖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것 같다.
A 지난해 이뤄진 민법 개정은 아동학대 문제 해결에 있어 중요한 계기였다. 자녀 징계권 조항으로 ‘친권자는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던 민법 915조가 지난해 1월 민법 제정 63년만에 삭제된 것이다. 이젠 부모들이 ‘보호’를 빙자해 체벌할 수 없게 된 것인데, 관건은 부모들이 이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라고 본다. 실제로 지난 5월 세이브더칠드런의 실태조사 결과 성인 10명 중 8명은 여전히 징계권 폐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녀 징계권 조항이 폐지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를 모르는 부모들이 많기 때문에 정부는 적극적인 캠페인 등을 통해 ‘현재 부모’와 ‘미래 부모’ 모두가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Q 과거 체벌식 훈육은 소위 ‘사랑의 매’라고 불렸다. 체벌과 학대의 모호한 경계,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
A 훈육을 위해 휘두르는 ‘사랑의 매’도 결국 학대로 볼 수 있다. 훈육과 체벌의 경계는 따로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둘을 구분 짓는 순간 부모들은 그 경계까지 체벌을 하게 되겠지만, 결국 이는 정도 차이일 뿐 학대라는 점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진정한 훈육은 부모의 인내심에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부모들은 잘못된 행동을 바꿔주지 않으면 자녀들이 성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진정한 훈육은 아이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기다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Q ‘아동학대 없는 사회’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또 정부에선 어떤 자세로 대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지.
A 우선 부모들은 ‘생각하는 모성’의 자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생각하는 모성’이란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며 자신의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그러기 위해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한다. 물론 부모들이 사회 생활하며 존중받는 것 역시 부족하다고 생각되지만, 그 감정을 아이에게 풀어내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은 ‘생각하는 모성’을 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부모들은 아이에게 객관식을 제시하기보단 주도적인 의견을 낼 수 있게 주관식으로 질문하는 등 아이를 진짜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아동학대 선제적 발굴과 예방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사후관리도 중요하지만 아동학대는 외부에 드러나기 힘든 범죄인 만큼 사전 발굴에 힘써야 한다. 정부는 지역 주민센터에서 아동학대 위험군 가정을 꾸준히 파악할 수 있고, 마을 공동체 사업 등을 통해 주변 이웃들의 어려움을 더 빠르게 인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선아 교수는…
1982년 숙명여대에 입학한 이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 학사‚ 하버드대 교육학 석사‚ 일리노이대(어바나-샴페인) 유아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부터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로 지내며 어린이 권리·영유아교육과정·영유아교육철학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했다. 또 숙명여대 아동연구소 및 숙명유아원 원장‚ 숙명여대 부속 풍무숙명유치원 원장‚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영유아의 놀이가 중심이 되는 제4차 표준보육과정과 2019 개정누리과정 연구를 통해 영유아가 행복하게 놀이하며 배우고‚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김정규·노소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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