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모래주머니’ 규제

규제 개혁은 역대 정부마다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핵심 과제다. 불필요한 규제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대중 정부는 ‘규제 기요틴(단두대) 제도’를, 노무현 정부는 ‘규제 총량제’를 도입했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고 했고, 박근혜 정부는 규제를 ‘쳐부숴야 할 원수’, ‘암 덩어리’, ‘손톱 밑 가시’에 비유하며 단호함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도 ‘붉은 깃발’을 언급하며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규제 개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했지만 말만 요란했다. 국회 입법 실패, 관료사회의 경직성, 이해 당사자의 반발 등으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들이 늘어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도 규제를 철폐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기업의 해외시장 도전을 ‘국가대표’에 빗댄 뒤 “(지금까지는) 모래주머니 달고 메달 따오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비유했다. 취임 후에도 “우리 기업이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뛰기 어렵다”면서 과감한 규제 철폐를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경제 자유도는 선진 경제권 중 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캐나다 프레이저연구소에서 발표하는 경제 자유도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 자유도(75.4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2위였다. 경제 자유도가 높을수록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 삶의 질도 향상된다. 한국의 경제 자유도가 낮다면 민간경제를 제약하는 정부 개입이나 규제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지난 17일 열린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에서 130여명의 중소기업 대표들이 “모래주머니는 전혀 줄지 않았다”고 한목소리로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날 중소기업계는 229건의 규제 해소 과제를 정부에 건의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최근 기업 경영활동에 걸림이 된다는 지적을 받는 ‘모래주머니’ 규제 120건을 발굴해 정부에 개선을 건의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규제개혁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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