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n번방’ 사건은 끔찍했다. ‘n번방’의 주범 조주빈은 아동·청소년을 협박해 만든 성착취 영상을 텔레그램으로 유포하고 돈을 챙겼다. 악랄한 범죄의 대가로 그는 징역 42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조주빈은 “멈출 수 없던 악마의 삶을 멈춰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최근 ‘제2의 n번방’으로 불리는 성 착취물 유포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 ‘엘’은 자신을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이라고 사칭하며 피해자에게 접근, 대화방으로 유인해 성 착취물을 요구했다. ‘엘’이 이렇게 만든 영상은 350여개에 이른다. 확인된 피해자 6명은 모두 미성년자였다.
n번방 유사 사건의 범행은 더 대담하고 교묘해졌다. 착취물을 제작하는 범죄자들은 여성이나 신뢰할만하고 친밀한 느낌을 주는 이를 사칭해 아동·청소년들에게 접근했다. 경찰·검사 등 수사기관 직원뿐만 아니라 쇼핑몰 최고경영자, 모델, 유학생 등 사칭 대상도 다양했다.
국회는 2020년 n번방 사건을 근절하겠다며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인터넷 사업자가 불법 촬영물을 확인 즉시 삭제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문제는 범행 창구가 된 텔레그램 대화방은 익명 채팅방이 아닌 ‘사적 대화방’으로 분류돼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텔레그램은 해외 서버에 기반을 둬 수사 협조를 받기도 어렵다.
‘n번방’이나 ‘박사방’ 등의 성 착취물 유통 창구 역할을 한 텔레그램을 제재하지 못하는 문제는 법 시행 초기부터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n번방 방지법’으로 텔레그램을 통한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진단했다. 성 착취물 범죄의 온상이 된 텔레그램에 대한 근본 대응책이 필요하다. 경찰의 수사기법 보완과 강화로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온라인 수색’ 도입 등 다각도의 노력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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