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경험·1인가구 증가 등 영향 차례상 대신 홈파티… 문화 간소화
# 고양에 사는 30대 직장인 이성호씨는 이번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다. 본가인 대구까지 거리가 멀기도 하고, 이번 추석 연휴 기간이 짧다보니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져서다. 시간을 들여 내려간다 해도 애인은 없냐, 결혼은 언제 하냐는 어른들의 지나친 관심에 이번 추석은 ‘혼추족’(혼자 추석을 보내는 사람) 계열에 합류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는 결심이 섰다. 명절 상여금도 받았겠다, 큰 맘 먹고 구매한 빔 프로젝터와 배달음식으로 연휴를 보낼 예정이다.
# 수원에 거주하는 20대 대학생 김민정씨는 올 추석 친구들끼리 모여 작은 ‘홈파티’를 계획하고 있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배달음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소소한 자리지만 학업, 취업준비 등 다들 바쁘게 살다 보니 이때가 아니면 다 같이 모이는 게 영 쉽지 않다. 친구들과 맞춰 입을 잠옷과 함께 먹고 마실 것들을 떠올리자니 올해만큼 추석이 기다려진 적은 처음이다.
펜데믹 경험과 1인 가구 증가 등의 영향으로 명절 풍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고향을 방문하기보다 휴식을 취한다거나, 차례상을 차리는 대신 홈파티를 즐기는 등 명절 문화가 간소화되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TV 광고에서도 이 같은 트렌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추석 인기 선물 브랜드 ‘정관장’은 ‘Welcome to 요즘 추석’이라는 제목의 CF를 통해 ‘올 추석 고향에 왔습니다. 마음의 고향으로’, ‘어디든 가족이 함께하는 곳, 그곳이 고향입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휴양지에서 힐링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고향을 방문한 대가족의 모습이 비춰졌던 지난해 CF와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바뀐 추석 분위기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제주항공이 지난달 진행한 ‘올 추석연휴 계획’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4천118명 중 절반이 넘는 2천81명(50.5%)이 올 추석에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고향 또는 가족, 친지방문’은 786명(19%)에 불과했으며,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냄’ 737명(18%), ‘아직 정하지 못함’ 514명(13%) 등의 순이었다.
지자체까지도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해 1인가구를 겨냥한 맞춤형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서울시는 추석 명절을 홀로 보내는 혼추족을 위한 추석맞이 특별 여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대표적으로 서대문구의 ‘따로 또 같이 한(1)가위’, 성북구의 ‘랜선 명절 페스티벌’ 등이 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절은 모두가 즐거워야 한다는 게 키워드”라며 “홈파티, 힐링 여행, 차례상 간소화 등의 변화는 명절에 대한 인식이 ‘모두가 행복하고 누구나 손꼽아 기다리는 날’로 탈바꿈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한수진·이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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