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에미상 받은 ‘오징어 게임’

연속극은 공중파 TV가 주된 유통 경로였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래서 해외 드라마는 마니아들이나 찾아보는 비주류였다. ‘미드’로 불리는 연속극들 얘기였다.

▶해외 드라마를 보려면 유료방송 채널에 가입하거나 온라인에서 콘텐츠를 내려받아 봐야 했다. 만국 공용어로 통하는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된 드라마를 자막으로 시청해야 한다는 것도 한국 드라마에는 높은 장벽이었다. 게다가 자막조차 제공되지 않거나 전문가가 아닌 해당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체 제작해 덧입히는 경우도 흔했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은 이후에 다급하게 자막 작업을 하다 보니 번역 오류도 많고, 자막이 제공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작품을 시청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관심을 받았다. 인기는 주로 한류스타에 대한 팬덤이 있는 일본이나 베트남, 태국 등지에 한정됐다.

▶그런데 이런 편견을 깨는 ‘사건’이 발생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이 그렇다. 2년 전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누린 영광이 재현됐다. 13일(현지 시간 12일) 열린 제74회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오징어 게임’은 6관왕에 올랐다. ‘기생충’이 뛰어넘었던 ‘1인치(자막의) 장벽’을 또 넘었다.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이정재) 등도 받았다.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 시상식인 에미상에서 비(非)영어권 드라마가 수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에서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트로피를 차지했다. 2020년 ‘기생충’이 외국어 영화로는 최초로 작품상을 거머쥐며 92년 오스카 역사를 새로 썼듯 ‘오징어 게임’도 미국 방송계 시상식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국제영화제인 아카데미와 달리 에미상은 미국 TV 프로그램이 중심이었다. 이 때문에 ‘오징어 게임’의 수상은 이례적이다. 한국 방송 시상식에서 미국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들과 경쟁해 당당히 수상한 셈이다. 영어권 드라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데는 팬데믹을 거치며 해외 작품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이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작품상을 수상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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