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핫 마이크

각국 정상이나 고위 관료, 유명 인사들이 마이크가 켜져 있거나 녹음기가 돌아가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뱉은 사담이나 농담이 여과없이 공개돼 논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핫 마이크(hot mic)’라고 한다. 마이크가 아직 뜨거울 때 터진 사고라는 뜻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올해 1월 브리핑 후 인플레이션 관련 질문을 한 기자를 향해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멍청한 개자식(stupid son of bitch)”이라고 했다. 인플레이션 문제에 시달리던 대통령이 신경질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결국 해당 기자에게 사과했다. 그는 2010년 부통령 시절 오바마 대통령이 ‘오바마케어’를 서명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을 치켜세우며 “이거 ×라 대단한 일(a big fucking deal)”이라고 했다. 부적절한 언사에 비난이 일자, 바이든은 “모든 마이크는 켜져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부주의함을 반성했다.

미·소 냉전 시대인 1984년엔 대참사가 될 뻔한 ‘핫 마이크’가 있었다.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라디오 방송 전 마이크 테스트를 한다면서 “미국인 여러분, 나는 러시아를 영원히 불법화하는 법안에 서명하게 돼 기쁘다. 5분 뒤에 폭격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테스트를 겸한 농담이었지만, 고스란히 보도돼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핫 마이크’가 주말 내내 화제가 됐다. 22일(한국 시간) 바이든 미 대통령 주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며 박진 외교장관 등에게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듯한 장면이 공개된 것이다. ‘한미동맹을 훼손할 수 있는 외교참사’라는 비판과 함께 ‘국민들이 (대통령 때문에) 쪽팔린다’는 비난이 거셌다.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라고 말한 것이고, ‘이 ××들’은 미 의회가 아닌 우리 국회를 가리킨 것이라고 해명했다. 궁색한 변명에 야당은 반발했고, 논란은 더 커졌다. 공무수행 중 나온 대통령의 말은 ‘사적 발언’일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언행의 품격을 지키고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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