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엄마, 영순’은 얼핏 보면 탈북민의 애환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어느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20년 넘게 방송 다큐멘터리를 찍어 온 이창준 감독(53)은 장편 영화로는 ‘왕초와 용가리’(2015), ‘테이크 미 홈’(2018)을 만들었고, 이번 작품에선 탈북민 영순씨와 아들 소사씨의 진솔한 내면을 들여다 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지난 22일 개막해 29일까지 이어지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한국 경쟁 상영작인 ‘엄마, 영순’은 지난 24일 첫 상영을 시작으로 26일, 28일에 관객을 만난다.
‘엄마, 영순’은 남한 땅에 정착한 지 10년 넘은 엄마와 아들을 따라간다. 폭력적인 남편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첫째 아들은 북한에 둔 채 둘째 아들 소사씨와 바다를 건너 2007년에 탈북한 영순씨의 남한 적응기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 같은 인생이다. 하지만 이 감독은 “탈북 과정을 상세히 나열하고 회상하는 대신, 우리 이웃들의 가족사에 얽힌 사연에 집중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영화에 드러나는 모자의 갈등은 남한과 북한 사이 촘촘하게 얽힌 정치적인 상황을 은유하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두드러지는 점이 있다면, 영순씨에게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어머니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는 것과 소사씨도 역시 엄마와의 관계로 골머리를 앓는 수많은 아들 가운데 한 명이라는 사실이다.
영순씨는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푸드트럭을 운영하며 악착 같은 생활력을 보여주는 ‘슈퍼 워킹맘’이다. 탈북한 이후로 하루도 여유롭게 보내본 적이 없는 그는 둘째 아들 소사의 속내를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느낀다. 엄마는 엄마대로 가족의 분열, 생활고의 아픔을 억누른 채 살아가고, 아들은 형에게 엄마의 사랑을 뺏겼다고 느끼는 트라우마를 오랫동안 숨긴 채 삶을 이어 간다. 후반부에 이르면 영화는 속내를 털어놓는 엄마와 아들의 얼굴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부산 집과 거제의 펜션, 각각 다른 시공간대에서 찍힌 마음들이 이어 붙는다.
이처럼 두 사람이 뱉어내는 진심을 카메라가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는데, 촬영을 의식하지 않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이 감독은 최소한 1년 넘게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과의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사람을 만나고 카메라를 들이미는 이 감독의 정공법으로 탄생한 ‘엄마, 영순’은 민감한 사회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 개인의 삶 속으로 스며들 때, 더욱 이야깃거리가 많아질 수 있다는 믿음의 산물이다.
이어 이 감독은 경청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할 때 질문하는 대신 잠자코 듣는다. 그렇게 출연자가 모든 말을 쏟아내고 마침내 할 말이 없어졌을 때 조금씩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면서 “제가 외골수에 짜증도 잘 내고 고집이 센 편인데,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제가 가진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인내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송상호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