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 집단이다. 혼인·혈연·입양으로 연결된 일정 범위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에 그렇게 규정돼 있다. 민법 제779조(가족의 범위)도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의 배우자, 형제자매, 직계혈족(부모와 자녀)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는 법률상 또는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이다. 현실은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가족’으로 변화됐다. 친구나 애인끼리 거주하는 비(非)친족 가구수와 가구원이 지난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비친족 가구가 1년 전보다 11.6% 증가한 47만2천660가구로 나타났다. 비친족 가구원도 101만5천100명에 이른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성인 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6명 이상(62.7%)이 가족 범위를 사실혼, 비혼·동거까지 확대하는 데 동의한다고 답했다. 앞으로 결혼보다 동거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 혼인·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주거를 같이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 각각 87.0%, 82.0%가 동의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기존 가족 단위에 맞춰져 있어 ‘새로운 가족’ 형태에 걸맞은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4월 가족을 좁게 정의하는 법 조항을 삭제하고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방지 근거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성가족부가 사실혼 및 동거가구를 법적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바꿨다.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단위’로 정의하는 조항을 삭제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최근 국회에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혈연 중심의 기존 가족관계 변화를 불편해하는 시각이 있긴 하다. 하지만 여가부의 행태는 비혼 동거, 사실혼, 노년 동거 증가 등 급변한 우리 사회 가족의 실태와 인식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가족 범위 확대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의미이고, 세계적 추세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시대 흐름을 거스르면 안된다. 기존 계획을 철회할 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법적·정책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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