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Docs 탐색전] 주변부에 머무는 존재들의 공존…박군제의 ‘해체: 바다의 몸’

image
'해체: 바다의 몸' 스틸컷

박군제 감독(38)의 다큐멘터리 영화 ‘해체: 바다의 몸’은 주변부로 밀려난 다양한 존재들의 공존을 응시하고 있다. 뚜렷한 이야기나 서사의 굴곡은 없지만 생명이 피어나고 소멸하는 순환의 감각을 섬세한 이미지와 나지막한 여인의 목소리로 담아낸다. 전작 ‘모자(母子)란 기억’(2016), ‘거대 생명체들의 도시’(2018), ‘건설 유니버스의 어떤 오류’(2020) 등에서 다뤘던 화두가 골고루 녹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한국 경쟁작인 ‘해체: 바다의 몸’은 지난 24일과 27일에 이어 폐막일인 29일에 상영된다.

image
'해체: 바다의 몸' 스틸컷

어느 바닷가 인근에 선박이 해체되고 남은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다. 선박 사업에 시행착오를 겪은 부부가 제대로된 배를 만들기 위해 역으로 배를 직접 해체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길거리를 떠돌며 부부에게 사료를 받아먹던 고양이 미미로부터 4대째 새끼가 태어나는 동안 선박의 내부 골조가 드러났고, 선실의 일부는 노부부와 고양이들의 휴식 공간이 됐다.

사실 노부부는 감독의 부모님이다. 박 감독은 부모님께서 만족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영상을 꾸준히 남겼다며 처음부터 영화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전반부는 감독의 일기장을 훔쳐보듯 담백하고 편안한 인상을, 후반부로 갈수록 프레임 내 요소를 신경 써서 배치한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내레이터인 어머니가 회상하는 사건들을 영상을 통해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을 법한 곳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들을 비추고, 잘려나간 철판 조각들을 바라보며 그 시점의 감각을 환기하고 있다. 재현의 방식에 관해 많은 고민을 드러내는 셈이다. 박 감독은 “원하는 바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있어 단순한 재현 대신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고 덧붙였다.

image
박군제 감독

이어 그는 “다큐를 찍다 보면 통제 불가능의 영역이 생기는데, 그 점이 다큐멘터리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내가 찍은 것들이 계획과 우연이 뒤섞인 산물이다 보니, 관객들이 특정 방향으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평생 바다를 떠돌던 선박 한 척이 한 노부부를 만나 해체된 뒤, 그 몸의 일부가 주변부로 스며든 존재들의 터전이 됐다. 무용해 보여도 어디서든 가치를 획득하는 것의 소중함이 영화 내내 맴돌고 있다. 박 감독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현 시대에, 어딘가에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기승전결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이미지와 소리를 음미하며 소박한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송상호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