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무명 의병을 찾아서] 잃어버린 독립운동가, 도내 이름없는 영웅들

독립유공자 서훈받은 의병 216명뿐...대부분이 이름없고 명수 가늠 안돼
정의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민병...1907년 양평서 英 종군기자가 촬영
독립운동 주인공 다시 역사 무대로

‘우리는 죽어야 할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해도 상관 없습니다.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죽는 편이 일본의 노예로 생명을 부지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으니까요.’”( 프레데릭 아서 맥켄지(Frederick A. Mackenzie)-『대한제국의 비극』 중, 1908)

어디에선가 본 듯한 사진. 영국 ‘데일리메일(Daily Mail)’의 종군기자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가 1907년 촬영해 우리에게 남아있는 의병의 모습이다. 1907년 경기도 양근군(현재 양평군) 인근에서 의병을 만난 맥켄지는 “군인(의병)의 영롱한 눈초리와 얼굴에 감도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았을 때, 나는 확연히 깨달은 바가 있었다”며 “적어도 그들은 자신의 동포들에게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라고 기록했다.

‘정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민병’, 의병이다.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정부의 부름을 받지 않고 스스로 무장해 일제 침략에 항쟁한 민족운동으로 불린다.

경기도는 1895년 을미의병이 봉기된 이후 본격적으로 의병전투가 시작된 곳이다. 일본이 작성한 조선폭도토벌지에 따르면 1906~1911년 의병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은 1만7천779명이다. 당시 경기지역 90여곳의 의병전투에서 전사한 의병 수는 1천186명으로 정밀 조사 시 더 늘어날 것으로 학계는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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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데일리 메일(Daily Mail)' 종군기자로 한국에 왔던 프레드릭 아서 매켄지(Frederick A. Mackenzie)가 1907년 촬영한 ‘항일의병’의 모습. 프레드릭 아서 매켄지

경기도 출신으로 의병 전쟁에 참여해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의병은 216명이다. 이들은 전투 중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하는 등 순국하거나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의병 전투 현장에서 전사해 이름이 전해지는 순국 의병은 윤인순 의병 등 소수다. 순국한 1천186명 대부분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 이 외에 숫자로도 남지 않은 무명 의병 수는 가늠할 수 없다. 의병전쟁에서 전사한 순국 의병은 일본의 ‘토벌’ 기록에 사살자 수로만 기록돼 있다. 의병은 스스로 신분을 숨겨야 했고, 전사한 순국 의병은 거의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에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다.

학계에서도 1차적 의병 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당시 남겨진 사료를 재구성해 연구하고 있다. 1913년 일본 조선주차군사령부에서 항일의병의 발생 원인·군대 해산·교전 상황 등을 수록한 의병탄압기록지인 <조선폭도토벌지> <폭도에 관한 편책>, 의병이 남긴 의병 전쟁 과정을 기록한 <진중일기> 등을 통해 확인할 뿐이다. 한말 의병에 대해선 연구가 되어 있지만 전사한 순국의병에 대해선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다.

경기일보는 ‘잃어버린 무명 의병을 찾아서’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해 결국엔 잃어버린 한말 무명의 의병을 찾아 나선다.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 경기문화관광연구사업단과 함께 경기문화재단 후원으로 진행되는 이 사업은 기록되지 못해 독립운동사와 역사의 뒤안길에 밀려난 한말 무명 의병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역사의 무대에 다시 올리는 작업이다. 일본의 토벌 기록에 사살 숫자로만 남겨진 이들을 되찾고 함께 기억해 우리의 역사를 다시 되찾으려는 첫 걸음이다.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1895년 이후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했고,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의병이 전사했다. 그런데 그들 무명의 순국 의병을 이름이 남아 있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우리의 산하와 하늘만이 기억하는 무명 순국 의병을 찾아 이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을 학계와 시민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정자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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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뉴스는 2022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 추진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후원:  경기문화재단) 엄민서 디자이너

무명 의병 흔적찾기... 시민·학계·예술계 머리 맞댔다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독립운동을 펼쳤지만 기록되지 못한 무명 의병을 찾아나서기 위해 역사학계와 시민·문화예술계가 모여 첫발을 내디뎠다.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과 ㈔경기문화관광연구사업단은 지난달 30일 본보 1층 소회의실에서 ‘잃어버린 무명 의병을 찾아서’ 1차 포럼을 열고 ‘무명 의병 포럼’ 조직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경기도·경기문화재단의 ‘2022 문화예술 일제 잔재 청산 및 항일 추진 민간 공모사업’으로 진행되는 이번 사업은 경기도 무명 의병들의 흔적을 찾기 위한 연구 및 조사, 콘텐츠 기획 등이 진행된다. 역사학자와 향토사학자 등으로 구성된 조사단은 앞서 7월6일과 9월1일에 매켄지 사진 촬영지로 추정되는 양평군 양평읍에서 1, 2차 현장 답사를 진행했고, 9월29일에는 본보 취재기자와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양평의병기념사업회 관계자, 지리·역사학자, 영상 전문가 등이 조사단에 합류해 전문가 회의를 서울 중구에서 진행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최종식 본보 기획이사를 비롯해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 △김금향 경기도사편찬위원회 위원 △김명섭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김지혜 용인문화원 용인학연구소 연구위원 △박준범 (재)서울문화유산연구원 부원장 △신대광 지역사교육연구소장 △윤유석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조미순 ㈜블루디씨 대표 △조성운 역사아카이브연구소장 △최영주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등 각계 전문가들이 포함된 준비위원회가 구성됐다. 또한 관련 전문가들과 사업의 취지와 방향성을 공유하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의 의견을 수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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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무명 의병을 찾아서’ 프로젝트를 위한 1차 무명 의병 포럼이 열린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일보 소회의실에서 참석자들이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의 주제발표를 듣고 있다. 김시범기자

포럼은 이채정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 경영실장이 사회를 맡아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의 주제발표와 준비위원장 및 위원 선출, 토론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준비위원장에는 강진갑 원장이 추대됐으며 △학술연구 △문화예술 △시민 △운영·홍보 등 분과별 추진 과제 등을 나눴다. 준비위원회는 이번 포럼이 향후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있어 개방적인 플랫폼 내지는 마중물이 되도록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향후 다양한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열린 포럼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조사단은 이번 사업에서 영국의 종군기자 프레드릭 아서 매켄지가 양평에서 만나 찍은 의병 사진을 주요 단서로 삼는다.

또한 1895년 을미의병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전투에 참여한 한말 의병으로 시기를 한정하고 올해 말까지 기초조사 및 콘텐츠 제작을 목표로 하는 1단계 계획을 완료한 뒤 해마다 단계별 로드맵을 설정해 오는 2024년에 ‘경기 무명의병 기념 횃불 광장’ 조성을 목표로 한다.

강진갑 원장은 주제 발표를 통해 “매켄지 사진에 등장하는 분들은 1907년의 후기 의병인데, 의병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은 우리가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들이지만 연구도 많이 되어 있지 않고 일반 시민들도 모르고 있다. 더 이상 우리가 이들을 방기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말 의병전쟁에서 전사한 순국 무명 의병을 찾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면서 “이번 사업이 단순한 세미나와 학술대회 개최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확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영주 사무처장은 “학술 연구, 콘텐츠 개발 및 전시, 시민들과의 소통, 지역 간 네트워크 활성화에 있어 각각 대응 방안을 마련해 협력과 연대의 구조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조미순 대표는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콘텐츠 구축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예컨대 양평군에서 시민 모금 운동을 전개해 사람들을 동참하게 하고, 그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도록 독려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준비위원회는 오는 19일 2차 포럼을 열고 내달 2일 집담회 형식의 3차 포럼에 이어 같은 달 24일에는 사업 성과를 발표하는 콘퍼런스(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정자연·송상호기자


인터뷰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 “순국 의병들 제대로 기억하고 기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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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해 결국엔 잃어버린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고 기억하고 기려야 한다.”

강진갑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왜 지금 무명의 의병을 찾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독립운동의 역사만 보더라도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말 의병 전쟁에서 전사한 순국 무명 의병이라는 것이다.

강 원장에 따르면 현재 의병 출신 독립유공자로 서훈 받아 우리가 그 이름을 기억하는 독립운동가는 모두 2천719명이며 이 중 경기도 출신이 216명이다. 1906년 이후 의병 전쟁에서 전사한 의병이 1만7천명을 넘고, 이 중 경기도 의병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도 1천100명을 웃돈다. 하지만 이들 중 이름이 전해지고 독립유공자로 포상받은 유공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

강 원장은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민들은 그들을 기억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이처럼 많은 의병 전사자들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며 “의병사 연구는 역사 학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의병 전쟁에서 전사한 무명 의병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보훈당국과 역사학자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무명의 의병을 찾기 위한 방안으로 강 원장은 △의병 전투가 있었던 전투 장소 △전투 내용 △전사 의병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를 우선으로 꼽았다. 그는 “학술조사를 선행하고 의병 전투 장소에는 표식물을 포함한 기념콘텐츠를 제작해 설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국 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이 이뤄지는 것처럼, 의병 전투 장소를 찾아 전사 의병 유해를 찾는 일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숫자로만 남았거나 숫자의 기록조차 없는 무명 의병 전체의 이름을 찾는 일은 가능한 걸까. 강 원장은 “의병이 남긴 기록과 일본 기록을 대조해 의병 전쟁에서 전사한 무명 의병을 찾는 일이 핵심적인 일이기는 하나, 무명 의병 전체의 이름을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만 그는 “외국에서는 무명의 용사를 ‘신만이 그 이름을 아는 용사’라고 한다. 우리의 무명 의병 역시 전투가 있던 산천과 평야, 그리고 하늘만이 기억하는 순국 무명 독립운동가다. ‘무명 의병’이란 이름으로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면서 “그 장소를 찾아 기념물을 조성하고, 무명 의병을 기리는 기념조형물을 국가의 중심 광장에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원장은 “역사를 연구하면서 늘 고민되는 점은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제대로 연구하고 기록하고 있는가’이다”라며 “혹자는 역사가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지만 역사는 ‘기록을 남긴 자들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역사학자들을 비롯, 국가보훈처 등 기관 및 단체 관계자들, 시민 모두 ‘우리는 왜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잃어버렸나’를 반성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번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는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다시 되짚고 역사를 바로잡는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 될 것”이라며 “이 일을 경기도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하겠다. 경기 지역사회와 학계, 예술가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린다”고 밝혔다.

정자연기자

이 기사는 2022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및 항일 추진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후원: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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