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의 늪에 빠지는 아이들] ‘쾌락’에 빠져 ‘나락’간 10대

또래와 어울리기 위한 ‘게임’ 종류로 인식... 경제적 기반 취약해 갈취·절도 2차범죄도
불법 스포츠토토 등 온라인 도박 쉽게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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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산 A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B군(18)은 동네 친구의 권유로 지난해부터 불법 스포츠토토를 하기 시작했다. B군은 수업 시간에도,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도박을 했고 손실이 커지자 학교 선배 C군(19)에게 100만원을 빌리면서 나체 영상을 촬영했다. 일주일 내 이자를 포함한 150만원을 갚지 못하면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조건이었다. 빚을 갚지 못한 B군은 어머니와 함께 C군의 협박에 시달리다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2. 수원 D고등학교에 다니는 E양(17)은 남자친구가 바카라를 알려줘 2년간 불법 온라인 도박을 해왔다. E양은 일주일에 5일 이상 도박을 하면서 채무가 2천여만원에 이르게 됐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E양이 자해를 하고 양극성 장애, 경계선 성격장애, 섭식장애 등을 앓으면서 가족에게 도박 문제가 알려졌고, 부모는 E양의 채무를 갚고 치료를 받게 했다.

경기지역 청소년이 ‘도박’의 늪에 빠지고 있다. 청소년은 도박을 게임의 한 종류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데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한 또래문화로 도박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11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집계를 보면 도박 중독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도내 10대 환자는 지난 2017년 6명에서 2018년 19명, 2020년 16명, 지난해 24명으로 최근 5년간 4배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국의 10대 도박 중독 환자 수가 3배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도내 청소년의 도박 중독 상담을 접수한 건수 역시 2020년 54건, 지난해 61건, 올해(8월 기준) 43건 등으로 증가 추세다.

현재 구글 등의 포털 사이트에서 ‘스포츠 토토’로 검색하면 수십개의 불법 사이트가 나타난다. 이들 사이트는 계좌 명의가 일치하는지 등의 정보만 유선으로 확인할 뿐 특별한 성인 인증을 하지 않는다. 미성년인 청소년이 도박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구조다.

청소년은 발달 특성상 심리·신체적 불안정성이 높기 때문에 도박 중독이 심각한 상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인터넷, 스마트폰을 많이 이용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온라인 도박에 노출될 기회가 많은 데다 코로나19가 확산한 이후 사적인 공간에서의 시간이 늘어났다는 점도 도박 중독에 큰 영향을 미친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도박 중독 문제가 2차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청소년은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탓에 도박으로 인한 금전 피해를 사채, 극단적 선택 등으로 해결하려 하거나 절도, 갈취 등 2차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 경기남·북부경찰청에서 도박 문제로 청소년을 검거한 수는 2019년 2명에서 지난해 14명으로 7배나 늘었다.

김경훈 경기남부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장은 “문제 도박자의 50% 이상이 청소년기에 도박을 시작한다. 도박을 하는 청소년은 충동성, 알코올 남용, 불법약물 사용, 우울 및 불안 수준이 높게 나타난다”며 “경기도 청소년의 도박을 예방하기 위한 활동이 정부, 지자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 살 버릇 여든 가는 ‘도박’… 치료 골든타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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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청소년기 잘못 들인 도박 습관이 학업과 교우관계, 성년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중독의 사다리를 끊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의 ‘2020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를 보면 도박 경험 등이 있는 청소년 중 성인이 돼서도 도박을 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38.3%로, 도박 경험이 없는 청소년(3.8%)보다 34.5%포인트나 높았다. 청소년기에 도박을 접하면 성년기에 도박에 빠질 가능성이 큰 셈이다.

안산시에 거주하는 A씨(20)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불법 도박을 하며 2천여만원의 빚을 져 중독 치료를 받다가 입대했다. 그러나 군대에서도 불법 도박을 하고, 동료 몰래 휴대전화로 동료의 사채까지 써가며 도박을 이어갔다. 결국 채무 독촉 등으로 휴가 복귀를 하지 않아 불명예제대를 한 뒤 재판을 앞두고 있다.

B씨(22) 역시 도박에 처음 빠진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3천만원의 빚을 지는 등 불법 도박에 빠지며 채무 독촉에 시달린 B씨는 빚을 변제하기 위해 도박 사이트의 운영 총책으로 일하라는 요구에 응했다. 결국 B씨는 성매매, 보이스피싱 운반책 등으로 일하다가 금융거래법 위반 등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학생들은 성인이 돼서 더욱 취약한 도박 중독 환경에 놓인다. 군복무 등으로 전문기관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중독 행태가 심해지는 것이다. 실제 도내 20~26세 군인이 도박 중독 치료를 받기 위해 경기남·북부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를 찾은 수는 2017년 6명에서 2018년 19명, 2019년 68명, 2020년 47명, 지난해 63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센터에 접수한 인원이 줄었을 뿐 사실상 증가 추세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전수미 경기북부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장은 “학교와 가정에서 어른들이 도박에 빠진 아이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한 대응을 일삼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도박은 한 번 발을 들이면 평생 신경 써야 하는 질환이다. 20~30대가 지나서도 떨쳐낼 수 없기 때문에 교육자, 가정, 민간 기관 등의 상호 협력을 통한 예방 교육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학교보건법 개정에도... 관리는 여전히 ‘뒷짐’

도박 교육 의무사항 아닌 ‘권고 수준’... 도내 학교 예방교육 참여율 해마다 ↓ 

道교육청 “분기마다 교육 공문 전달... 예산 편성 등 예방 대책안 검토할 것”

미디어 발달로 손쉽게 도박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지만 경기도교육청과 도내 지자체는 도박 예방 교육이 의무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다.

11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6월29일 학교보건법이 개정돼 ‘도박중독 예방’ 등을 위한 보건교육을 하도록 명시했다. 음주·흡연·마약·성교육 등 기존에 이뤄졌던 중독 교육에 도박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도박 교육은 여전히 의무사항이 아니다. 개정 학교보건법 제9조에 명시한 음주·흡연·마약, 성, 이동통신단말장치 등 전자기기, 도박 등 법에서 나열하고 있는 6가지 중독 교육 중 학교장이 한 가지 이상 선택해 교육하면 되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자체의 조례와 학교의 상황에 따라 도박 교육을 진행하지 않아도 된다”며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도박 교육을 당장 진행하기 어려운 측면 등을 고려해 의무사항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경기도교육청 역시 지난 2019년 1월에 제정한 ‘경기도교육청 학생 도박 예방교육 조례’에 따라 각 학교에 도박 예방 교육을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도내 학교에서 이뤄지는 도박 예방 교육은 지난 2019년 144개교에서 5만9천468명의 학생이 참여한 데서 지난해 123개교, 4만3천817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등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기도 학생의 도박 예방 교육 참여율은 17개 시·도 중 최하위권에 속해 있다. 2019년 도내 중학생의 도박 예방 교육 참여율 순위는 전국 17곳 중 13위였지만 지난해 16위로 하락했다. 고등학생의 참여율은 2019년 최하위인 17위에서 지난해에도 여전히 17위에 머무른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도교육청은 조례를 개정하거나 도박 교육을 위한 예산 편성 계획조차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박 교육을 의무적으로 하고 있는 부산시 등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부산시교육청은 지난 2월부터 1년에 2시간씩 도박 중독 교육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각 학교에 지침을 내리고 있다.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수업이 증가했기 때문에 이에 따른 중독 교육도 철저히 하는 것이다. 부산시교육청은 올해 도박 교육에 3천만원의 예산을 편성하고, 매년 예산을 확대할 계획이다.

전남도교육청 역시 올해 4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학생 도박 예방 교육 및 예방 활동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도박 중독 문제가 발생한 학생에게 방문 상담 및 치료, 법률 지원 등 원스톱 서비스를 하는 동시에 예방 교육도 지원하고 있다. 내년엔 교사 연수 등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보건법이 개정됐지만 교육부 등이 이에 따른 도박 교육 자료, 의무 시간 등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아 학교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라며 “분기마다 도박 교육을 시행하라는 공문을 보내 권고하고 있다. 예산 편성 등 학생 도박을 예방하고 줄이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전문가 제언 “사회문제로 심화 가능성… 교육당국 관심·지원 필요”

도박 중독 주제 공모전·캠페인 개최하고, 교과목 편성 등 체계화된 교육 방식 도입

‘질환’이라는 점 인지해 확실히 치료해야 

전문가들은 도박을 접할 수 있는 기기 등이 늘어난 만큼 청소년 도박 중독이 앞으로 사회적 문제로 심화될 것으로 판단하면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체계적인 도박 교육을 위해서는 관련 교과목을 편성하고, 교육을 하는 주체를 명확히 하는 등 교육 체계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영호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는 “중독 문제를 다루는 교과를 정규 교육 과정에 편성하면 보건 담당 교사 등의 책임 주체가 명확해지고 대응 체계가 개선될 수 있다. 특히 단발성의 1~2시간짜리 교육이 아닌, 단계별로 체계화된 교육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교사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영역에선 도박 치유 관련 센터 등에서 전문가들이 교육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도박 교육과 관련한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이 같은 논의를 시급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경훈 경기남부도박문제예방치유센터장은 “학교보건법을 개정했지만, 학교 폭력·자살·음주·금연 등에 밀려 도박 교육은 후순위가 되는 게 현실”이라며 “학교 측이 센터에 요청하지 않으면 교육을 나갈 수조차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학교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는 도박을 근절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경기도교육청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도내 도박 치유 센터 등도 별도 예산이 없어 체계적·포괄적인 교육을 하기에 한계가 있는데, 도교육청이 센터에만 교육을 하도록 하니 궁여지책의 교육만 이뤄지고 있다”면서 “경기도가 타 지역에 비해 학생 도박률이 높기 때문에 도교육청의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청소년 도박 교육 관련 예산을 별도 편성해 학교 교육뿐 아니라 공모전·캠페인 등 홍보 활동을 벌여 대내외적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도박 예방에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노성원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도박 중독에 빠진 아이들은 당장 이득이 되거나 일시적인 쾌락을 도모하는 데만 몰두한다. 연쇄적으로 술, 담배, 마약 중독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도박은 단순히 나쁜 습관이나 버릇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니며 ‘질환’이라는 점을 인지해 확실히 치료,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보람·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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