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작가에겐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경계를 허무는 행위예술가’ 등과 같이 몇 가지 대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탄생 90주년이자 사후 16주기가 되는 해인 올해에도, 그는 여전히 국내외를 막론하고 예술을 비롯한 각 분야 전반에 많은 영향력을 선사하고 있다.
백남준의 작업 속 맥락은 몇 가지 갈래의 흐름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먼저 그의 작업에선 퍼포먼스가 매체와 결합될 때 벌어지는 일들에 주목해야 한다. 또 그는 텔레비전 수상기를 이어 붙이거나 쌓는 등 조형물을 만들고 특정한 형상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그의 작품에선 디스플레이 속을 채우는 영상의 내용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으며, 그가 다양한 매체를 거쳐 빛을 사용하는 방식은 마치 추상 회화의 표현 기법을 불러온 듯한 인상을 선사한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같은 백남준의 작품 세계를 다시금 돌아보면서, 사회 정책과 교육이나 복지 문제뿐 아니라 교통과 통신 기반 시설 등을 폭넓게 아우르며 목소리를 냈던 그의 새로운 면모를 만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 13일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개막해 내년 3월26일까지 이어지는 백남준 90주년 특별전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다.
전시는 백 작가가 여러 언어로 남긴 보고서를 비롯한 기획안, 편지, 에세이 등의 기록물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영어로 작성된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확장된 교육’(1968), ‘후기 산업사회를 위한 미디어 계획’(1974), ‘PBS 공영 방송이 실험 비디오를 지속하는 방법’(1979)을 소환하는 이번 특별전에선 정책 자문가이자 사회 참여 아티스트인 백남준의 사유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의 기록과 함께 배치된 작품들을 통해 민간 재단과 학교와 연구소, 방송국 등의 인프라가 예술을 매개로 사회와 소통하려고 했던 그의 실천에 미쳤던 영향도 찾아낼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윤서 학예연구사는 다양한 형식의 기록들을 조명하는 작업을 통해 몇 가지의 챕터로 그의 연대기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사회가 요동치던 변혁의 1960~70년대, 세상의 변화에 대한 통찰력이 엿보인 백남준의 흔적을 들여다보는 일은 지금껏 지속돼 온 연구에서 주목 받지 못했던 지점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기회이자 현 시대의 사람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일러주는 지침으로 작용한다는 것.
김 학예연구사는 “그의 익숙한 모습뿐 아니라 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면모를 이끌어내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면서 “백남준의 구상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당대 사회적 제도 기반과 예술 생태계의 흐름이 그와 어떤 관계를 맺어가는지 키워드에 따라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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