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후 11시40분쯤, 딸과 함께 그곳에 간 친구의 전화를 받았어요. 딸이 압사 당했고, 심정지라고….”
서울 이태원 참사로 목 숨을 잃은 A씨(23·여)의 아버지 B씨(52)는 31일 인천 부평의 한 장례식장 빈소에서 이같이 말했다. B씨는 “딸은 항상 명랑하고 저하고도 즐겁게 지냈어요. 저 보다 엄마랑 많이 친했는데…”라고 울먹였다. 이어 “그날(참사 당일)도 일단 잘 다녀오라고 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라고 전했다.
이날 장례식장엔 A씨의 지인으로 보이는 20대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앳된 얼굴이지만, 검은색 정장을 입은 이들이 빈소로 들어가는 뒷모습은 보는 이마저 안쓰럽게 했다. 빈소 입구 스크린에 담긴 A씨의 사진을 본 한 여성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자, 주변에 있던 지인들도 눈물을 훔치며 그를 달랬다. B씨의 사진이 있는 스크린 앞을 한동안 떠나지 못했던 이들은 옷 매무새를 고친 뒤 빈소로 향했다.
A씨의 빈소 앞 간이 의자엔 70대로 보이는 여성 3명과 50대 남성이 앉아 이태원 참사 당시 여성 피해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A씨가 인파에 밀려 넘어지고 깔려 압사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한 70대 여성은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떻하느냐”며 통곡했다. 이 여성을 달래던 50대 남성은 다름 아닌 A씨의 아버지 B씨였다. B씨는 당일 상황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지만, 붉어진 눈가엔 눈물만 가득했다. B씨는 “딸이 압사해 심정지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태원으로 향했어요”라며 “가는 도중에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이송했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갔는데 딸은 이미 죽어있었어요”라고 했다. 그는 “다행이 딸의 아이폰 비밀번호를 풀었어요. 못 풀었으면 친구들이 (빈소로) 오지도 못했을 거에요”라며 “딸 친구들이 많이 와서 깜짝 놀라고 있어요. 딸이 보고싶은 사람만 오라고 했는데…”라고 했다. 경기도의 한 대학 간호학과 졸업반인 A씨는 이미 3곳의 큰 병원에 합격, 앞으로의 미래를 꿈 꾸고 있었다. B씨는 “(병원) 3군데 합격했어요”라며 “앞으로는 직장생활하고 결혼해서 훌륭하게 살 줄 알고 기대했는데 이렇게 되니까…”라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주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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