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심폐소생술(CPR)

지난달 29일 밤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10만여명이 모였던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 참사가 벌어졌다.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서로 뒤엉키면서 수백명이 쓰러지고, 그 위에 또 쓰러졌다. 대참사로 150명 이상이 사망했고, 축제는 한순간 지옥이 됐다.

이날 압사 사고 현장에서 폴리스 라인 안쪽의 한 남성이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쳤다. “군대 갔다 오신 분 중에 심폐소생 할 수 있는 분 도와주세요. 여자분들 중에 간호사이신 분”이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20여명의 시민들이 폴리스 라인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수백명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구급대원과 경찰 인력이 부족하자 시민들이 앞다퉈 심폐소생술에 나섰다.

심폐소생술(CPR·Cardio Pulmonary Resuscitation)은 병원 밖에서 심정지가 발생한 환자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심장이 멈추면 혈액 순환이 중단된다. 뇌는 4∼5분만 혈액공급이 차단돼도 영구 손상을 입게 된다. 정지된 심장을 대신해 심장과 뇌에 산소가 포함된 혈액을 공급해줄 수 있는 응급처치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 및 자동제세동기(AED)를 이용해 응급처치를 하면 생존율이 80%까지 높아진다. 하지만 4분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1분 지연 때마다 생존 확률이 7~10%씩 낮아진다.

심폐소생술로 심정지된 사람을 살린 사례가 종종 있다. 지난달 14일 고령의 남성이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에 쓰러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간호사 경력이 있는 수서경찰서의 한 순경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곧 도착한 119 구급대와 함께 응급조치를 해 남성은 의식을 되찾았다. 16일에는 올해 간호대학을 졸업한 새내기 간호사가 길에서 심정지로 쓰러진 50대 여성을 심폐소생술로 구했다.

CPR를 시행하면 하지 않을 때보다 환자 생존율이 3배 이상 높아지는 만큼, 일반 시민도 숙지해야 한다. 갑자기 쓰러진 심정지 환자의 생존은 목격자에 의해 좌우된다. 신속하고 정확한 응급처치가 내 가족, 내 이웃의 생명을 직접 구할 수 있다. 심폐소생술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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