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능력·기회… 겉으론 평화로운 사회일 수 있지만 공평함 빙자한 모순 많아… ‘경쟁’의 의미 재고해 봐야
경쟁을 원하는가. 고등학생들은 친구들과의 상대평가를 통해 경쟁하며 대부분의 고등학생은 절대평가를 원한다. 졸업을 하고 성인이 돼서도 우리는 취업 준비를 할 때 여러 사람과 경쟁한다. 우리 사회는 끊임없는 경쟁으로 이뤄져 있지만 사람들은 경쟁을 좋아하지만은 않는다. 경쟁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경쟁이 이뤄지는 이유는 자원, 혹은 일자리 등은 한정돼 있고 모든 사람의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능력을 통한 평가가 가능해서다. 우리는 자원을 무한하게 만들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람의 능력을 똑같이 만들면 경쟁이 없어질까.
풍자 소설로 유명한 작가인 커트 보네것 주니어의 도서, 해리슨 버거론(Harrison Bergeron)은 모든 사람의 능력을 똑같이 만듦으로써 경쟁 사회의 개념을 없애 버린다. 이 사회에서 지능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들은 특정한 이어폰을 끼고 생활한다. 정부에서는 이 이어폰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지속해서 보내고 이를 통해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을 막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조지(George)와 헤이즐(Hazel)이다. 이 둘은 해리슨 버거론의 부모님이다. 조지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어 이어폰을 끼고 생활하는 반면, 헤이즐은 평범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 둘의 아들인 해리슨은 엄청난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이유로 감옥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조지와 헤이즐은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바로 귀에 달린 이어폰과 ‘평범한’ 지능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해리슨이 죽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헤이즐은 울지만 곧바로 자기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평범한’ 지능을 가진 사람이 자기 아들이 죽었다는 중요한 사실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책에서 ‘평범한’ 지능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사회와 연관돼 있다. 이 사회에서 ‘평범함’은 다른 사람과 동등한 것이다. 그렇기에 ‘평범한’ 지능은 평균적인 지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지능을 의미한다. 이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하향평준화 시키기 때문이다. 심지어 말을 잘하는 아나운서에게 핸디캡을 달아 말을 못 하게 만들어 옆에 있는 발레리나가 아나운서의 말을 대신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이 사회에는 공평함을 빙자한 모순적인 상황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경쟁 없는 사회의 평화를 이어 나가고 있다.
이처럼 경쟁 없는 사회, 공평하고 평화롭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낮은 지능과 이상한 목소리를 가지고 똑같이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회, 그것이 경쟁 없는 사회다. 사실 모든 사람이 동등한 능력을 갖췄기에 경쟁이 불가능한 사회라고 볼 수도 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자기 아들이 죽은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능, 아나운서가 본인의 일도 똑바로 하지 못하도록 막는 정부와 같은 요소들이 올바른 사회상을 상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점이 생긴다.
우리는 경쟁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경쟁이란 그저 스트레스 쌓이고 남들을 이기기 위해 자신과 남을 비교하게 만드는 요소일까. 혹은 본인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향상하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사회의 전체적인 생산성을 증진하기 위한 요소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경쟁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지게 됐다. 경쟁을 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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