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평택이전, 상생 해법은. 上] 낡고 텅빈 상가... 준비없이 맞는 ‘8만명 이웃’

캠프 험프리스 기반시설 태부족... “미군 문화 수요 충족 대책 절실”
유일 상권인 ‘안정리 로데오거리’
건물 938곳 중 80%가 20년 이상 쓰레기 방치에 골목 정비도 안돼

주한미군 용산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리고 평택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한다. 이달 중 한미연합군사령부(연합사)가 평택시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의 이전을 공식적으로 완료하기 때문이다. 캠프 험프리스는 여의도 면적의 약 5배인 약 14.7㎢ 규모로 주한미군과 군무원, 가족 등 관계자 8만여명이 거주할 예정이다. 연합사 이전 완료를 맞아 평택시가 주한미군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는지 짚어보고, 상생 발전을 위해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기지 앞엔 식당과 술집이 대부분인데, 관광하거나 쇼핑을 하려면 누구라도 서울로 가지 않겠습니까.”

6일 오전 11시30분께 평택시 팽성읍 주한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 안정리게이트 인근. 미군 10여명이 점심식사를 하러 온 듯 케밥과 햄버거 등 미군의 취향을 고려한 식당을 둘러보거나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클럽과 바 등의 유흥업소도 눈에 띈다.

이곳은 기지 앞 유일한 상권인 ‘안정리 로데오거리’다. 하지만 이들 식당을 제외하면 미군의 취향·체형 등을 고려한 양복점 및 수제화 상점, 아동용품점, 값싸고 특색있는 보세물품 상점 등은 없다.

한국식 도기와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곳이 소규모로 있긴 하지만 들어가는 이가 없어 파리만 날리는 상황인 데다, 거리 양쪽으로 들어선 상가 건물 10여곳엔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어 황량함마저 감돌았다.

메인 거리 옆 오른편 골목엔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좁은 길이 이어지며 빌라와 낡은 주택이 즐비했다.

곳곳엔 쓰레기가 방치돼 있고 미군뿐 아니라 통행하는 주민도 적어 로데오거리로 인식하기 어려웠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주한미군 타일러씨(28)는 “험프리스 인근에는 즐길거리가 없기 때문에 주말이면 동료들과 문화생활, 유흥 등을 위해 2시간이 걸리는 홍대로 간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에 온 지 10개월이 됐지만 그동안 로데오거리의 달라진 것은 없다”며 “가족이 왔을 때 체류할 수 있는 호텔, 쇼핑몰 등 최소 생활에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는 상점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오는 15일 한미연합사 700여명이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주둔을 완료하면 평택은 ‘세계 최대 규모의 주한미군 주둔지’가 된다. 미2사단과 미8군사령부, 한미연합사와 관계자들까지 더하면 최대 8만여명이 캠프 험프리스에 거주한다. 그러나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상권 등 기반시설은 여전히 부족해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평택시에 따르면 안정리 로데오거리 일대 938개 건물 중 749곳(79.9%)이 20년 이상인 노후 건물이거나 연도를 알 수 없는 건물로 나타났다.

또한 로데오거리의 점포 중 64곳(5.3%)은 공실이며, 공가와 폐가도 각각 27곳(2.1%), 8곳(0.6%)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난 2017년 미군기지 인근의 범죄발생 빈도가 평택시의 다른 지역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나 상권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박경찬 한국외국인관광시설협회 평택지부장은 “미군이 선호하는 분위기나 콘텐츠를 지닌 가게는 홍대 등 서울지역에 많이 있지만, 안정리는 낙후돼 있다”며 “미군의 소비, 문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상인과 주민, 지자체의 행정적인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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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을 앞둔 가운데 캠프 험프리스가 자리 잡은 팽성읍 일대의 상권 형성을 위해선 규제 해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농업진흥지역으로 묶인 캠프 험프리스 윤게이트 앞 토지(왼쪽)와 고도제한에 걸려 있는 안정리 로데오거리. 윤원규기자

고도제한·교통문제가 발전 저해... 규제 해소 ‘절실’

주한미군 평택 이전이 이달 중 완료되는 가운데, 캠프 험프리스가 자리잡은 팽성읍 일대를 활성화할 상권 형성을 위해서는 고도제한·교통 문제 등과 관련된 규제 해소가 절대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한미군은 지난 2003년부터 평택 이전을 추진해 2017년 7월 미8군사령부, 2018년 6월 주한미군사령부 및 미군·군무원·가족 등 1만여명이 각각 용산기지에서 평택으로 이전했다. 의정부·동두천 등 경기 북부에 주둔했던 미2사단도 2016년 7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이전을 완료했음에도 5년간 상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6일 평택시에 따르면 상권 개발이 어려운 데는 ‘고도제한’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평택시는 캠프 험프리스와 오산공군기지로 인해 전체 면적 458.2㎢ 가운데 38%인 185.4㎢가 비행안전구역으로 지정돼 건축물 높이의 제한을 받고 있다. 안정리를 포함한 기지 일대는 비행안전 5구역으로 캠프 험프리스 내 활주로 표고를 기준으로 45m 이하로만 건축이 가능하다. 15층 이상의 고층건물은 들어서기 어려운 상태다.

또 안정리 상권 내 사유지에 위치한 도로도 상권 활성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시는 지난 2018년부터 공용도로 등 안정리 내 도로를 정비해 오고 있으나 골목에 위치한 사도의 경우 토지주의 동의를 얻지 못해 정비하지 못하고 있다. 골목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사도는 관리가 어렵고 도시가 슬럼화하는 주원인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통행이 자유로운 블록화한 상권의 재형성도 저해하고 있다.

이와 함께 평택 중심지와 팽성지역을 잇는 유일한 길목인 국도 45호선의 상습 정체 등 교통 문제도 팽성지역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이를 두고 지역사회에선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도로 확장 등 교통 문제를 포함해 고도제한 완화, 대규모 공원 건설 등은 중앙정부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팽성지역에 추진 중인 송화2지구(6천400가구)와 함정지구(4천400가구)의 조성 후에도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해선 인프라를 개선하거나 상업시설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이동훈 평택시발전협의회장은 “평택은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지역인데 미군기지 이전이 완료됐다고 중앙정부에서 모르는 체하면 안 된다”며 “평택시와 정부가 협의해 규제 완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진형 평택시 도시계획과장은 “고도제한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 6월 용역에 착수, 내년 8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 심의’에 완화를 요청할 예정”이라며 “고도제한 완화부터 추가적인 개발 사업 승인까지 중앙부처의 협의가 필요한 사항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협의해 안정리 상권을 안정적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전문가 제언 “상권 활성화·가족친화도시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주한미군 평택 이전에 발맞춰 평택시 지역경제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민·관 태스크포스(TF) 등을 구성하고, 가족친화적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장정민 평택대 국제도시부동산학과 교수는 “팽성읍 일대가 고도제한에 묶여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노후한 상가들이 재건축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평택은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곳인 만큼 지역과 미군기지가 상생하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를 갖춰야 한다”며 “시와 시민, 상인, 전문가 등 민·관으로 구성된 TF를 만들어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수립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장 교수는 “8만여명의 미군과 가족이 왔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안정리와 함께 동창리나 도두리 등 인근 구역을 미군이 원하는 콘텐츠를 담은 공간으로 개발하는 방법도 구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동시에 상권 특화 등 지역의 자체적인 노력을 통한 상권 기능 강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범현 성결대 도시디자인정보학과 교수는 “안정리는 건물 노후화가 심각한 데다 1970~80년대에 유행했던 시설이 그대로 있어 사실상 미군을 끌어들일 수 없는 상태”라며 “이를 위해선 평택시가 상점 매입 등을 해 한국적·지역적 특성에 맞는 가게들을 입점시키고, 상인들도 트렌드에 맞춰 가는 노력을 해 상권을 특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평택시는 선제적으로 골목길 등을 개선하고, 주차장 확장 등 공공 인프라 조성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주한미군 가족의 영외 거주율을 더욱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레저·편의시설을 확충하고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거리를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창언 경주대 ESG경영학과장은 “가족을 동반한 주한미군이 증가하면서 기지촌 이미지에서 벗어나 가족친화적이면서도 안전하고 밝은 도시문화를 선호하고 있다”며 “평택이 보유한 지역 자원을 활용하는 자세도 필요하지만 미군기지 영내에서 느낄 수 없는 한국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최해영·김보람·안노연·김기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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