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치여 잊고 살던 또 다른 내 모습...직장인 여성들 모인 ‘동탄여울합창단’
황금같은 주말을 지나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월요일. 대부분의 직장인은 파김치가 되지만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눈을 반짝이는 이들이 있다. 바로 화성시 최초로 지난 2018년에 창단해 일하는 여성을 위한 저녁 모임을 갖는 ‘동탄여울합창단’이다.
지난달 31일 찾아간 화성시 동탄영광교회의 한 예배실에서는 문 너머로 알토와 소프라토, 메조 소프라노 등 각기 다른 음역대가 합을 맞춰보듯 퍼져나왔다. 각자의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18명의 단원 중 이날 연습엔 12명의 단원이 자리했다. 대부분 저녁 식사도 거른 채 곧장 달려와 배가 지칠 법도 했지만 이내 지휘자의 선창과 반주자의 피아노 선율에 따라 목을 풀고 ‘사랑의 찬가’를 불렀다. 몸을 흔들고 때로 손으로 음을 맞춰 보는 열정적인 연습은 두 시간 가까이 계속 됐다.
단원 대부분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 직장인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합창단 모임은 자신에게 선물하는 힐링의 시간이다. 합창단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껏 단장하고 무대에 올라 합창하는 모습에서 성취감과 만족감, 그에 더한 행복을 느낀다. 실제로 지난달 열렸던 합창 공연 이후로 단원들의 결속력이 한층 더 높아졌다고 한다.
20대 쌍둥이 남매를 둔 김영애씨(52)는 이날 오후 7시에 퇴근하자마자 연습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병원에서 간호 업무를 보다가도 이곳에선 ‘알토 김영애’가 된다. 그는 “어린시절 막연히 TV에 나오는 연예인을 보며 가수를 꿈꿨는데 직장과 가정 생활을 병행하며 그 꿈을 잊고 살았다”면서 “노래 부르는 걸 워낙 좋아했다. 이곳에 있으면 잊고 살던 어린시절의 ‘나’를 되찾은 기분”이라고 웃어 보였다.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 이곳에는 모녀도 함께한다. 어머니 장성숙씨(71)와 딸 김도임씨(41)는 이곳에서 알토와 소프라노를 담당하는 동료가 된다. 대학에서 서예를 강의하는 딸 도임씨는 “평소 하는 정적인 일과 정반대의 합창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며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매우 소중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합창단 활동을 하며 그동안 못 봤던 어머니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여기서는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각자의 파트를 담당하는 합창 단원이 된다. 엄마가 예쁘게 드레스를 차려입고 공연을 준비하시는 모습에서 아이같이 순수한 웃음을 봤다”고 덧붙였다.
이원진 단장(55)은 “낮에 모이는 합창단은 많지만 직장인을 위해 저녁 모임은 없어서 합창단을 만들었다”면서 “첫 모집 당시 금세 20명이 모였던 기억이 난다. 일하느라 잊고 살았던 삶의 행복에 대한 갈증이 다들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단장은 “단원들 스스로 행복을 느껴야만 그 행복을 남들에게도 전파할 수 있다. 그게 함께 하는 합창의 묘미”라며 “행복을 나눠주고 위로를 전하기 위해 병원이나 양로원 등을 찾아 이웃과 함께 나누는 봉사 공연도 다니고 싶다”고 전했다.
이나경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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