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12월22일 인천 제물포항. 살을 에는 바닷바람 속에 저마다 봇짐을 멘 사람들이 일본 상선 겐카이마루(玄海丸)호에 올랐다. 이윽고 뱃고동 소리와 함께 정든 월미도를 돌아 먼바다로 나아갔다. 떠나는 이들도, 부두에 남은 이들도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망국의 조국 산천을 뒤로하고 만리 타국 미국 하와이로 향하던 한국 최초 이민선의 출항 모습이다. 이후 106년이 흐른 2008년 6월. 그들이 떠나던 월미도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우뚝 섰다. 이날 개관식에는 로널드 문(문대양) 하와이주 대법원장도 참석했다. 첫 이민선을 탔던 이민 1세대의 손자가 할아버지가 떠난 인천항을 한 세기나 지나 찾은 것이다. 그는 “힘들었던 시기에 각고의 노력으로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린 조상들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2003년부터 추진돼 2008년 문을 열었다. 당시 안상수 인천시장이 하와이에서 열린 ‘미주 이민 100주년’ 행사에 간 게 계기가 됐다. 백발의 할머니들이 인천에서 왔다는 얘기만 듣고도 안 시장의 뺨을 비비며 울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긴 세월 사고무친한 타국에서 마지막 떠나온 인천항을 고국의 모습으로 그려왔던 것이다.
그 이민사박물관이 올해 ‘그날의 물결, 제물포로 돌아오다’를 주제로 한민족 이민 120주년 특별전을 성황리에 열고 있다. 하와이 이민에서부터 일제강점기 강제이주, 70년대 산업이민까지 다양한 모습의 ‘코리아 디아스포라’를 700여점의 사진과 영상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5부작의 이 특별전은1902년 첫 이민선을 타고 호놀룰루항에 닿은 102명 삶의 궤적을 비롯, 재외동포들의 어제와 오늘을 고스란히 조명한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독립운동 자금을 아낌없이 대거나, 부디 잘 사는 조국이 되기를 염원하며 인천에 공과대학(인하대)을 세운 사연들 앞에 서면 절로 숙연해진다.
개관 이후 부단히 알찬 콘텐츠들을 채워 이제는 750만 재외동포들의 구심점 역할을 다하고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에 격려를 보내고 싶다. 인천시도 지난달 송도국제도시에서 ‘2022 세계한인회장대회’를 개최하는 등 신설 재외동포청 유치에 나서 있다. 이에 앞서 그 수많은 발자취들이 녹아있는 특별전을 보면서 꼭 되새겨야 할 것이 있다. 120년 전 봇짐 등짐을 메고 조국을 떠나던 이들의 애타는 염원이다. ‘다시는 못난 조국이 되지 말라’던 그들의 염원을, 오늘의 우리는 과연 제대로 새기고 있는가.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