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끝의 시작”

전쟁이 터졌다. 사흘 만에 도시의 일부분이 점령 당했다. 보름 정도 지나자 완전히 포위됐다. 그렇게 도시는 무너졌다. 올해 3월2일이었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이 그랬다. 흑해와 드니프로강을 낀 중요한 항구 도시다. 러시아는 이곳을 자국령 헤르손주(州)의 주도(州都)로 접수했다. 러시아에 오랫동안 무릎을 꿇을 것으로 보였다.

▶이 도시의 지정학적 위치도 예사롭지 않다.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와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곳이 바로 동부 돈바스다. 그래서일까. 질곡(桎梏)의 현대사가 이 도시의 자화상이다.

▶러시아는 군민정청(軍民政廳)도 설치했다. 다른 점령지와 함께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했다. 그렇게 봄과 여름, 가을이 지나갔다. 아무런 변화도 시도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암울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점령군이 헤르손에서 철수하면서 실효지배 포기를 선언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5일 오전(한국시간) 이 도시를 찾았다. 8개월 만이었다. “우리는 평화를 찾을 준비가 돼 있다.” 외신이 전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전쟁의 대가는 크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숨졌지만 강한 군대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꾸준히 되찾고 있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한 동맹국들의 지원에 대해서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헤르손 시내에 게양된 우크라이나 국기 앞에서 오른손을 가슴에 댄 채 군인과 주민들과 함께 국가를 제창하기도 했다.

▶무릇 평화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역사가 이를 입증해준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헤르손 수복의 의미에 대해 던진 첫 워딩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끝의 시작입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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