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금휘 병점2동 자율방재단 대표 “R=VD…봉사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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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란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닌, 결국 저 자신을 위한 것이더라고요.”

평범한 일상 속에서 혹자의 빛이나 희망이 되는 것.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한 번쯤은 시도해봤을 법한 달콤한 상상에 가깝다.

최금휘 병점2동 자율방재단 대표(64)는 지금도 늘 이런 상상을 한다. 또 매순간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지난 2008년. 수원에 살다 우연히 화성으로 이사 온 뒤부터였다.

보배 같은 딸 두 명을 애지중지 키워 대학까지 보내놓으니 그토록 아름다웠던 젊음은 온데 간데 없었고, 그제서야 비로소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

이 과정에서 최 대표는 남은 생을 보다 의미 있게 살아보자고 결심한 뒤 이윽고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부족함 없이 잘 살아온 만큼 어려운 이들에게 세상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그는 2009년 3월부터 화산동지역아동센터 차상위계층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오카리나 교육 봉사에 나섰다.

오카리나는 최 대표도 취미로 배운 정도라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그럼에도 1년여 간 꾸준히 임한 끝에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을 선물 받았다.

그는 “당시 차상위계층 아이들이 음표도 모르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며 “그래서 기본부터 충실히 가르쳤고, 곧바로 개선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모습을 보니 제 자신이 더 겸손해지기 시작했다”며 “결국 봉사는 남이 아닌 제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부연했다.

최 대표는 이를 계기로 같은 해 12월부터 약 6년 간 수원시 소재 초·중·고에서 차(茶)를 통한 예절교육 봉사도 펼치게 됐다.

그 사이 2014년부터 1년 동안은 화성 용주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통한 다례(茶禮)봉사도 병행했다.

외국까지 나가 공부도 할 만큼 차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그가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고 나선 셈이다.

중간 중간 고비도 있었다. 그는 봉사 도중 번번이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하는 등 한때 과도한 봉사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봉사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봉사가 어느새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7월부터는 현직인 병점2동 자율방재단 대표도 맡았다. ‘환경 문제는 결국 나의 문제’라는 평소 생각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후 현재까지 지역 안전 예찰을 비롯해 지난 9월 태풍 힌남노 북상에 따라 발생한 침수피해 가구 복구활동 등을 벌이고 있다.

물론 ‘봉사의 시작은 건강’이라는 새로운 신념도 생겨 현재는 기존에 진행하던 봉사를 대부분 정리하고, 방재단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런 최 대표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는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또 새로운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R=VD(Realization=Vivid Dream)다.

최 대표는 “급변하는 자연·사회 환경만큼 재난도 대형·복합화 되고 있다”며 “우리는 이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미래 세대가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온전히 물려줘야 한다”며 “제가 앞장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저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그걸로 됐다”며 “앞으로도 제 장점을 극대화해 사회의 빈 공간을 채우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기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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