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어릴 때 바라던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처럼 뜻하지 않게 일어나기에 설렘을 배가시킨다. 겨울에 열리는 사상 최초의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 얘기다. 월드컵을 보기 시작한 이후 정말로 듣기 싫은 말이 바로 ‘경우의 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제외한 대회에서 대한민국 축구는 항상 ‘경우의 수’와 ‘징크스’라는 단어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다. 지긋지긋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도 2차전 무승 징크스는 이어졌고, 그 패배로 실낱 같은 희망을 안은 채 경우의 수는 여지 없이 따지게 됐다. 그 경우의 수를 위해 대한민국 축구는 또 한번의 기적을 만들어 내야 한다. 4년 전 당시 피파(FIFA) 랭킹 1위였던 독일을 2 대 0으로 제압했던 ‘카잔의 기적’처럼 말이다.
▶사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카타르 도하는 긍정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대한민국은 도하에서 치러진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막판에 일본을 제치고 극적으로 본선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고, 이는 ‘도하의 기적’으로 불려 왔다. 기적이 일어났던 곳에서 다시 한번 제2의 도하의 기적이 일어나길 온 국민이 바라고 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바로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이다.
▶‘평행이론’과 ‘노쇼(No-Show)’.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은 한 조에 배치됐고, 이번 대회와 같이 예선 3차전 경기를 치렀다. 당시 포르투갈은 루이스 피구 등 월드클래스 멤버들을 앞세운 세계 축구의 강호였다. 하지만 박지성의 골로 대한민국이 신승, 포르투갈은 짐을 싸고 떠났다. 그리고 김태영 선수의 마스크는 캡틴 손흥민 선수로 이어지기에 20년의 평행이론이 진행되길 많은 이들이 꿈꾸고 있다.
그리고 노쇼. 복수의 시간. 지난 2019년 유벤투스 친선 경기 때 보여준 호날두의 ‘노쇼 파문’은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이제 기적의 명분은 충분하다. 태극 전사들이여. 고개 들고 당당히 싸우자. 당신들은 침체된 대한민국의 활력소이자, 기적의 서사시를 쓰는 주인공이니까 말이다.
김규태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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