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특정해도 검거까지 1년 넘게 걸려... 전례·통계 없어 수사 지침도 ‘全無’ 대책 시급 형사정책硏 “아동·청소년 성착취 목적 등 관련 범죄 수사 과정서 법리 적극 검토해야”
지난 1월 미국에 거주 중인 30대 남성 A씨(한국 국적)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B양(11·한국 국적)에게 네이버 메타버스인 ‘제페토’를 통해 연락을 시도했다.
당초 A씨는 B양의 나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 “나이를 비밀로 한 채 놀자”며 제안한 뒤 본인 신용카드로 아바타 관련 아이템을 사주며 B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A씨는 서서히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B양에게 신체 일부 부위를 찍어 사진을 전송해 달라고 요청했고, 어린 나이에 정확한 사리분별을 할 수 없었던 B양은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일산에 거주 중인 B양의 부모는 딸의 피해 사실을 알게 됐고 일산동부경찰서에 신고를 접수, 경찰은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A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런 가운데 경찰은 A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받고 인터폴에 적색수배 등의 조치를 했으며 법무부에 범죄인 인도청구를 요청했지만 지난달 2일 범죄인 인도 불청구 의견을 전달 받았다. 이는 전례가 없는 범죄이기 때문에 신병을 구속해 범죄인을 인도하는 등의 절차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결국 경찰은 A씨가 내년 2월께 입국하겠다는 의견을 전해오면서 수사를 멈추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경찰은 신원을 특정하고도 1년 가까이 A씨를 조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A씨는 B양에게 성적인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는 등 범행을 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메타버스가 교육을 비롯한 전 분야에서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메타버스를 이용한 신종 성범죄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메타버스는 가상의 공간인 만큼 피의자를 특정하더라도 검거까지 상당 시간이 걸리고, 이에 대한 전례가 없어 수사 지침 등도 전무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경찰에서도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목적의 대화 등 메타버스 상에서 벌어지는 그루밍 성범죄 관련 신고 및 검거 건수 통계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경기북부경찰청 관계자는 “메타버스와 관련된 성범죄 신고 건수는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은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 영역 밖에 있더라도 대한민국의 형법이 적용되는 속인주의 대상이다”라며 “판례가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형사사법 질서를 만들 때 미성년자의 미래를 지우는 그루밍 범죄에 대해 수사한다면 수사과정에서 최대한 적극적으로 법리 검토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현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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