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김승옥의 시나리오 두 편으로 들여다보는 영화의 틈새…'안개', '도시로 간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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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역사’와 ‘무진기행’ 등을 발표하고, 1965년에 ‘서울, 1964년 겨울’로 동인문학상을 받으며 6·25전쟁 이후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승옥. 그의 글 속엔 꿈과 낭만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와 일상에 대한 반항심과 일탈 등의 요소가 짙게 깔려 있다. 김 작가는 20여편의 소설을 남겼고 전후세대 문학에 팽배했던 무기력증을 지워냈다는 점에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김승옥 작가는 소설만 집필하지 않았다. 그는 화가와 시사만화가로도 활동했고, 시나리오 작업을 통해 영화계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각본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김승옥의 시나리오 두 편 '안개, '도시로 간 처녀'가 오는 10일 발간된다.

■ 소설 ‘무진기행’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까지…‘안개’

김승옥 작가는 자신의 작품인 ‘무진기행’을 직접 각색해 영화 ‘안개’의 시나리오로 매만졌다. 그렇게 ‘안개’는 소설가 김승옥이 영화인의 영역에 발을 들인 첫 번째 계기가 됐다. 그는 ‘무진기행’을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을 당시, 인물들의 동선을 둘러싸는 배경 요소 등을 즉시 떠올리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각본의 제목처럼 항상 안개 낀 마을인 무진을 찾은 무기력한 청춘들의 불안정한 사랑과 일탈을 다룬다.

‘무진기행’에서 출발한 ‘안개’는 1967년 김수용 감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올해 6월 극장가를 찾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의 탄생에도 영향을 줬다. 1967년의 ‘안개’는 신성일과 윤정희가 주연을, 이봉조 작곡가가 음악을 맡았다. 이봉조가 10대였던 정훈희에게 작업을 맡겨 탄생한 노래 ‘안개’가 영화 ‘헤어질 결심’의 삽입곡으로 쓰이게 된 연결고리가 만들어진 셈이다.

■상영중단까지 됐던 김승옥의 미발표 시나리오…‘도시로 간 처녀’

‘도시로 간 처녀’는 김승옥 작가가 발로 뛰며 직접 수소문해 취재하는 과정을 통해 살을 붙여 나간 시나리오다. 각본엔 세 여인의 삶에서 드러나는 인생관, 그들의 사랑 방식이 곳곳에 녹아 있다. 불안한 청춘들의 노동과 삶, 사랑을 과감하게 들춰낸 작품이다. 시내버스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노동 환경, 버스회사의 횡포 등 사회고발성 요소가 자리해 있다.

1981년 개봉한 영화 ‘도시로 간 처녀’는 김수용 감독이 연출하고, 유지인과 이영옥, 금보라가 주연을 맡았다. 대종상 작품상 후보까지 오르는 등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상영 시작 일주일 만에 상영 중단됐다. 영화에 묘사된 선정적인 장면, 특정 노동자의 근무실태를 사회적 혼란으로 야기하는 장면 등이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노동연합총연맹(한국노총)이 운전기사 및 버스안내양의 명예에 손상을 입히고 인권을 유린했다는 명목으로 문화공보부에 상영 중단을 요청했다. 그렇게 영화가 일주일 만에 극장가에서 사라진 비화가 있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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