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에서는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지난 정부의 보장성 강화 정책 때문에 재정이 파탄 나고 국민의 희생이 커진다는 이유였다. 과연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모럴해저드가 문제라고 할 만큼의 수준일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매년 보건의료와 관련된 통계를 공개한다. 올해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전체 의료비 지출에서 정부와 건강보험의 비중은 62.6%로 OECD 평균인 76.3%보다 낮다. 그리고 의료비에서 개인이 부담하는 비율은 27.8%로 OECD 평균 18.1%보다 높다. 흔히 대한민국은 전국민건강보험으로 인해 보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많은 편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부와 언론들은 고령화로 인해 예상보다 더 빠르게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된다며 보험료는 올리고 보장은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법률에 따르면 건강보험 국고지원 비율은 20%로 정해져 있지만 2021년 기준 14.3%에 불과했다. 우리와 비슷한 의료체계를 운영하는 나라들의 국고지원금 비율은 일본은 38.8%이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50%가 넘는다.
정부에서 주장하는 방향으로 건강보험이 흘러간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먼저 건강보험으로 보장하지 못하는 검사나 치료들을 강조하며 민간보험 상품이 더욱 늘어난다. 지금까지 보험수가 삭감으로 심사평가원 눈치를 보던 병원과 의사들은 이제 민간보험회사의 기준을 맞추려 노력한다. 이미 민간보험인 자동차보험의 경우 비급여 항목에 대한 삭감이 심각하다. 민간보험에 가입한 보험료에 따라 환자들은 다른 검사와 치료를 받게 된다. 주변과 비교하며 더 비싼 보험을 가입하려 하고, 보험회사는 이익이 더 많이 되는 상품을 만들어 홍보하며 악순환이 반복된다.
흔히 미국에선 돈이 없으면 치료받을 수 없고, 미국의 공공의료는 최악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미국의 공공병원 병상 수 비율이 전체 병상 수 대비 24.9%인 데 비해 우리나라는 10.3%에 불과하다.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2개로 OECD 평균인 2.8개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런 공공의료 인프라 속에서 건강보험의 국고 지원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하면 수많은 국민의 건강권과 생명이 위협받는건 자명하다.
대통령은 인기가 없어도 반드시 건강보험을 개혁하겠다지만, 진정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의사들은 현재의 정책이 저수가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아프고 병원을 가게 된다. 이제 접수할 때부터 보험상품을 확인하고 검사와 치료에서 차별 받는 세상이 머지않았다.
이길재 가천대 길병원 외상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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