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미국 출신의 설치미술가 바버라 크루거는 ‘I shop, therefore I am(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을 제목으로 한 사진작품을 세상에 소개하며 현대사회에서의 소비개념을 예술적으로 확장한 바 있다. 그녀의 메시지는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명언 ‘I think, therefore, I a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을 차용한 것으로 소비에 대한 현대인의 욕망을 예술작품을 통해 거침없이 드러낸 것이다. 당시 파격적인 메시지로 주목받았던, 사진과 텍스트가 마치 광고물처럼 조합된 이 작품은 35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몇 가지 화두를 제기할 수 있을 만큼 흥미롭다.
먼저 이 작품을 통해 쇼핑이라는 행위를 인간의 존재감과 동일시할 만큼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소비에 대한 인식이 확대됐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광고적 수법의 메시지 아트는 일상과 예술의 자연스러운 융합을 함의한다.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예술가들이 예술을 타 산업과 융합하고 일상으로 가져와 대중화시키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취했음을 밝혀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대중의 일상 속에서 상업적인 가치를 목적으로 삼는 제품 브랜드들도 예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자신들의 상품과 예술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을 드러내는 아트마케팅에 힘을 쏟기 시작했으며 이는 이후 수많은 아트 컬래버레이션이 탄생하는 배경이 됐다. 대표적인 예로 2012년 대규모로 진행된 루이비통과 일본의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컬래버레이션을 들 수 있다. 당시 컬래버레이션 전시를 기획한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는 ‘상업적’으로, 전 세계 루이비통 매장들의 쇼윈도에서는 ‘예술적’으로 전시가 진행됐고 결과적으로 루이비통의 명성과 야요이의 예술성도 모두 성공을 거두게 됐다.
이렇게 브랜드를 소비하는 소비자와 예술을 관람하는 관객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에서 동시대의 적극적인 아트마케팅은 소비자를 자신도 모르게 브랜드의 주체자로서 깊이 빠져들게 한다. 이러한 브랜드의 소비자 주체성 현상은 예술의 관객 주체성과 궤를 같이한다. 역사와 함께 진화한 관객들이 이제 예술 공간에서 단순히 관극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고 소통하며 생산자의 관점에서 예술을 경험하기를 희구한다. 또 경험에 더해 예술과 상품을 자신과 동일시하기를 바라는 욕구도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수많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예술적 형태의 전시회가 오늘날과 같이 성행하게 되는 데 견인한 배경이다. 실제로 세계적인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은 더욱더 예술과 닮아가기를 원하고 예술적 차원의 상업활동에 힘쓴다. 관객들은 해당 브랜드의 전시 관객에서 예술작품을 구매해 소장하려는 소비자로 변모한다. 즉, ‘I shop, therefore I am’ 브랜드 제품이 어느새 예술작품으로 둔갑해 내 손으로 오게 되는 경험을 만끽하는 것이고 쇼윈도가 아닌 전시회나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작품 같은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