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꿀벌 13억마리 ‘증발’…'재해' 아니라는 당국

꿀벌 ‘실종’… 양봉농가 ‘막막’... 농가 “이상기후 재해 인정해야”
농림부 “원인 복합적, 특정 못해”... 道 “올해 농민 지원안 고민 중

12일 의왕시의 한 양봉장에서 주인 장성범씨가 꿀벌이 사라진 소비(벌집틀)를 살펴보고 있다. 윤원규기자

 

“양봉업에 10년 넘게 종사하면서도, 꿀벌이 사실상 ‘전멸’한 이런 광경은 처음 봅니다.”

 

12일 의왕시의 한 양봉농가. 주인 장성범씨(61)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최근 날씨가 따뜻해지며 겨울잠에 든 벌들을 ‘깨우려’ 벌통을 열었는데, 벌통 안에 옹기종기 붙어 있어야 할 꿀벌들이 온데간데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그나마 남은 벌통 3개 중 한 개를 열어 소비(벌집틀)를 꺼내 보였지만, 이마저도 벌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장씨가 소유한 벌통 약 160개 중 살아 남은 벌통은 고작 3개다.

 

지금은 겨우내 ‘반(半) 동면’에 들어갔던 꿀벌들을 하나 둘 깨우기 위해 벌통에 화분떡(꿀벌 사료)을 넣어주는 시기다. 이는 여왕벌이 산란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자, 한 해 농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야 할 벌들이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장씨는 “작년에도 폐사율이 약 50%는 나와 어려웠는데, 올해는 폐사율이 90%를 넘었다”며 “이 때문에 벌들을 새로 사야 하지만, 이조차도 가격이 2배 가까이 올라 죽을 맛”이라고 털어놨다.

 

재작년부터 현재까지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전례 없는 ‘꿀벌 집단 실종’으로 경기도내 양봉농가들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는 이상기후가 주된 원인으로 꼽히지만 ‘재해’조차 인정받지 못해 양봉농가들의 불만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도내 양봉농가 2천927곳 중 피해 농가는 1천321곳으로 집계됐다. 꿀벌 사육군수의 경우 25만6천448군 중 8만8천300군으로 조사됐는데, 마릿수로 따지면 경기지역에서 사라진 꿀벌은 약 13억마리(통상 월동 시기엔 1군당 1만5천마리의 벌이 군집한다)로 추산된다. 지역별로 보면 사육 군수가 많은 남양주, 고양, 여주, 양평 등에서 피해가 크다.

 

이 같은 ‘꿀벌 집단 실종’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이상기후다. 특히 본격 월동에 들어가는 작년 11월, 평년보다 따뜻했던 기온으로 봄이라고 착각한 꿀벌들이 본능적으로 벌통을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꿀벌은 기온에 매우 민감해서, 따뜻한 줄 알고 밖으로 나온 뒤 기온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다시 ‘귀가’하지 못한다.

 

이에 양봉업계는 이미 꾸준히 지속됐던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인 만큼 ‘농업재해’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농림축산식품부 등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선다. 피해의 원인을 이상기후로 특정하기엔 원인이 매우 복합적이라는 것이다.

 

도 축산정책과 관계자는 “농식품부에는 꿀벌 월동 피해를 가축재해보험에 따른 재해로 인정해달라고 건의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작년에는 꿀벌 구입비를 지원했는데, 올해는 어떤 방향으로 농민들을 지원해야 할 지 아직 고민 중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