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다음 소희’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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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는 대기업 통신회사의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학생 소희가 3개월 만에 목숨을 끊은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소희(김시은 분)는 폭언과 성희롱, 부당한 대우를 받다 세상을 떠나고, 형사(배두나 분)가 그 죽음의 전모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영화는 2017년 전주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고 실습생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고객의 계약 해지를 막는 업무를 담당했던 여고생은, 숨지기 전 부모에게 ‘콜 수를 못 채워 늦게 퇴근할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거나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의 열악한 근로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현장실습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위험에 노출되는 일은 반복됐다. 같은 해 제주 음료공장에서 실습생이 공장 기계에 끼여 목숨을 잃었고, 2021년에는 여수의 요트장에서 잠수자격증도 없는 현장실습생이 요트 바닥 청소를 하러 물에 들어갔다가 숨졌다.

 

영화는 모두 현실이 될 수 없지만, 종종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지금도 어딘에선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치열하게 버텨내는 이들이 있기에, 사회의 단면을 그려낸 영화들은 큰 울림을 준다.

 

영화 ‘다음 소희’도 그렇다. 소희가 다니던 학교는 취업률이라는 지표를 사수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 학생들을 도구처럼 취급하며 성과에만 집착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첫발을 내딛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정주리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주말 특성화고 졸업생·재학생들과 ‘다음 소희’를 관람했다. 김 지사는 덕수상고 3학년 재학 중 촉탁직으로 취업했던 사실을 전하며, “저 스스로가 오래 전 ‘소희’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내에서 넥스트(다음) 소희가 한 명도 나오지 않도록 민생을 돌보겠다”고 했다. 현장실습 학생들의 안전과 권익을 위해 정치권과 교육계도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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