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안재홍 선생의 호를 딴 민세초교

호(號)라는 게 있었다. 시제를 굳이 과거완료형으로 쓴 까닭은 요즘은 거의 사라져서다. 물론 아직까지 일부 서예가나 문학인 등이 사용하고 있다.

 

본명 부르기를 피하는 풍속에서 비롯됐다. 조선시대 선비가 학문을 익히고 가르친 곳을 자신의 호로 붙였다. 이황 선생의 ‘퇴계(退溪)’나 이이 선생의 ‘율곡(栗谷)’, 박지원 선생의 ‘연암(燕巖)’ 등이 그렇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어휘를 호로 붙였다. 주시경 선생의 ‘한힌샘’, 최현배 선생의 ‘외솔’ 등이 그렇게 등장했다.

 

안재홍 선생은 평택을 대표하는 우국지사다. 일제강점기 신간회운동, 조선어학회 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렀다. 광복 이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 미군정청 민정장관, 제2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됐다. 1989년 3월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선생의 호는 ‘민세(民世)’다. 1911년 와세다대 정경학부 재학 당시 ‘민중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

 

이런 가운데 내년 9월 평택 고덕국제화도시에 문을 여는 초등학교 이름이 안재홍 선생의 호를 딴 민세(民世)초등학교로 결정됐다. 학교명선정위원회가 안재홍 선생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가칭 고덕4초등학교 교명을 이처럼 선정했다. 앞서 교육당국은 지난해 5월 고덕3중학교 명칭도 민세중으로 결정한 바 있다. 평택교육지원청 측은 “주민과 지역 인사가 함께 교명 선정에 참여해 지역 정서와 특성, 역사와 전통을 반영한 교명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중국 등 외국에선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딴 교명이 더러 있다. 중국 혁명가 중산(中山) 쑨원의 고향인 광저우에 설립된 중산대학교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선 평택이 유일하다. 민세 선생을 배출한 민족의 도시답다. 늠름하고 자랑스럽다. 다른 도시들도 본받을 만한 사례여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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