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셸 위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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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타 사진작가

“78수는 꼼수였다.” 2019년 11월, 국수 이세돌이 은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천상의 맛을 내는 기적의 사과가 있다.

 

주인공은 숲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10여년간 사과는 열리지 않았다. 초읽기에 몰린 그는 죽기 위해 산에 올랐다가 튼실한 도토리를 보고 깨달았다. 관리하지 않고 야생과 싸우게 했다. 몇 년 후 나무는 사과를 냈다. 기적의 사과다.

 

이세돌의 은퇴 인터뷰가 있기 3년 전인 2016년 3월, 인간과 인공지능(AI) 바둑기사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국이 있었다. 다섯 판을 싸워 네 판을 지고 한 판을 인간이 이겼다. 나는 AI가 네 판을 이긴 이유보다 한 판을 진 이유가 궁금했다. 인간의 모든 기보를 딥러닝한 AI를 상대했기 때문이다. 꼼수였다. 듣보잡 꼼수에 AI가 버퍼링을 했다.

 

블랙홀과 빅뱅의 양수겸장, ‘AI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다. 인간의 전장보다 더 치열하게 전개된다. 미래에 대한 우려도 비등한다. AI의 대부로 알려진 제프리 힌턴은 “AI가 두렵다”고 했다. 긍정과 부정의 성찰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AI 전국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AI를 이긴 이세돌의 꼼수와 생사를 도치시킨 기적의 사과를 가져온 이유다.

 

이세돌의 꼼수는 변수의 변종이다. 2023년, AI 바둑기사의 아킬레스는 선명해졌다. 번번이 인간의 꼼수에 버퍼링한다. 꼼수는 인간의 최종 병기다. 그것을 인간 세상에서 ‘신의 한 수’라 불렀다.

 

인류사의 중대한 변곡점에는 변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변수는 변증해 상수가 된다. 상수의 어미인 변수는 다름이다. 다름은 예술이 되고 일상이 돼 문화가 되고 문명이 되듯이 인류사의 기념비적 변수 AI는 거대한 문명으로 간다.

 

천상의 맛은 야생에서 나왔다. 야생이 사과나무에 잠자고 있던 본성을 깨웠다. 그 맛이 인간의 본성에 잠자고 있던 미감을 깨웠다. 초읽기가 인간의 본성에 있던 ‘신의 한 수’를 깨웠다. AI도, 꼼수도, 천상의 맛도,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있던 것들이다. 이는 빅뱅 이전에도 무언가 있어 우주가 창조된 것과 같은 이치다.

 

AI는 빼어난 인간의 자식이다. 버퍼링을 당했던 꼼수도 단박에 상수로 만들고, 같은 수에 두 번 당하지 않는다. 인간은 상수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계속 꼼수를 생산한다. 2인 삼각 경기가 시작됐다. 합이 맞지 않으면 둘 다 쓰러진다. 인간도, AI도 알고 있다. 인간 본성에 잠자고 있는 포스트 AI를 깨울 때다. 그럼에도 AI의 썰(說)을 받아쓰기만 할 때 창조는 고사되고, AI의 노리개로 전락할 것이다. “문명이 모든 것을 가져갔다.” 2007년 10월, 뉴욕에서 만났던 마지막 남은 인디언 영적 리더의 통곡처럼 보호구역에서 이방인들이 제공한 먹거리에 취해 영혼을 상실한 인디언들의 아류, 아Q가 될 것이다.

 

1827년 무렵 셔터를 누르는 순간 사건을 재현하는 사진술이 발명됐을 때 “회화는 죽었다”고 했다. 회화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사진으로 회화의 정체는 더 돈독해졌다. 1970년, 컬러TV 가 시판되기 시작할 무렵 “영화는 죽었다”고 했다. 영화의 미장센은 더 스펙터클해졌다. 지금, 상상을 초월한 디지털 해상력은 수억광년 우주를 장엄하게 재현한다. 불과 1년 전, 시빗거리였던 AI 그림은 해일처럼 볼거리를 생산하며 현대미술의 메카 뉴욕에서 ‘AI 아트(ART)’로 자리했다. 다름으로 차이는 분명해졌다. 그 다름의 총합이 AI다. 역설적으로 AI의 넘사벽은 불완전한, 그러나 창조적 존재, 인간이다.

 

‘AI 천하지대본’의 시대, 인간의 존재 이유는 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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