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시행규칙 개정위한 연구용역…도입까지 시간 걸릴 듯 사설 구급차 이용료 부담하는 울산 사례 참조 必
특별교통수단에 침대형 휠체어 설치를 가능케 하는 헌법재판소 결정에도 불구, 중증 와상장애인(누워서 지내는 장애인) 이동 불편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헌재는 지난달 25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 시행규칙이 특별교통수단 내 설치 의무화 휠체어 범위를 누운 채 탈 수 있는 침대형 휠체어까지라고 해석하면, 기존 표준 휠체어로 한정한 시행규칙이 '평등권을 침해 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15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도내에는 전국 장애인 265만6천여명의 22.1%인 58만7천여명이 살고 있다. 이중 혼자서 거동이 불편한 수준의 장애인은 21만6천여명으로 누워서 생활하는 중증 와상장애인 수는 최소 수백여명으로 추정 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동안 경기지역에는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상 침대형 휠체어는 설치 의무화 장비가 아니었던 탓에 이들의 이동을 돕는 장애인 콜택시가 단 한대도 운영되지 않았다.
수십만원을 들여 사설구급차를 이용할 수 밖에 없던 중증 와상장애인들은 헌재 판결에 따라 빠른 시일내 병원은 물론 가족·친척 방문 등이 쉬워질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교통부는 헌재 판결과 관련, 교통약자법 시행규칙 개정을 위한 연구용역을 내년 1월 마무리할 계획이다. 용역 후 입법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안전기준 등도 마련해야 하고 별도의 특별교통수단 확보에 필요한 예산도 계산해야 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헌재가 제시한 2024년도까지 시행규칙이 바뀔 수 있도록 준비 중으로 일정 부분 국비가 보조될 것"이라며 “현재 진행중인 특별교통수단 다양화방안 검토를 통해 개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국비 지원이 이뤄져도 시·군 등의 예산 투입을 위해선 개별적 조례 제정, 비용 추계 등 진행할 절차도 적지 않다. 여기에 시행규칙 개정에 따른 수혜 계층에 대한 현황 파악 계획도 없는 정책적 무관심도 신속한 대처를 막는 원인으로 여겨진다.
일선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시행규칙 개정만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국토부가 시행규칙을 개정해 지침을 내려주면 그때 예산을 확보한 뒤 차량 개조 등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복수의 시·군 관계자들도 “현행 규정상 안전기준 등이 마련되지 않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내년 말 시행규칙을 개정하더라도 와상장애인을 위한 특별교통수단 도입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김태현 경기도뇌병변장애인 인권협회 사무국장은 “침대형 휠체어를 사용할 정도의 와상장애인들은 이동의 불편함 등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 지금까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면서 “법이 개정된다해도 유예 기간을 주는 등 실제 적용까지는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따라서 헌법에 따른 '장애인 평등권 보장’을 위해 내년 말로 예정된 개정 권고 시한을 떠나 정부·지자체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울산광역시의 사례로 볼 때 지자체의 의지만으로 와상장애인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누워 이동할 수 밖에 없는 와상장애인은 앞으로도 늘어날 수 있고 장애인 인권 측면에서 이동권 보장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준비 과정이 길어질 수 있는 만큼 비용, 인프라 구축 등을 고려해 차량 준비나 개정 법률 적용에 앞서 바우처 형태의 사설 구급차 보조금 지급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와상장애인 불편 해소...울산처럼 경기도 지자체도 적극 대응해야
김포에 사는 이건창씨는 뇌병변 1급 지적 장애인으로 누워서만 외출해야 하지만 몸을 반강제로 구부린채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왔다.
비싼 사설 구급차 이용을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이씨는 헌재 판결 소식을 듣고 곧 편하게 병원 등을 이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씨는 아직도 몇년을 신체적 고통을 참으며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14일 기자에게 “하루라도 빨리 됐으면 좋겠다”며 실망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지자체 차원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기일보 취재에 따르면 울산광역시는 내부 검토를 거친 끝에 시행규칙도 어기지 않고 와상장애인 이동도 돕는 아이디어를 냈다. 민간사설구급차를 좀 더 싼 가격에 이용할 있는 방법을 찾았다.
와상장애인이 병원 검진조차 비싼 비용을 치르고 사설 구급차를 타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는 문제점을 파악한 울산시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현행 교통약자법 시행규칙 상 설치의무대상에서 빠진 침대형 휠체어를 장착한 장애인콜택시를 운영하기에는 예산 부담뿐 아니라 시행규칙 위반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민이었다.
애초 와상장애인은 병원을 이용할 때 119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지난 2019년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 비응급신고로 분류돼 구조 구급 요청의 거절 대상이 됐다.
이에 울산시는 지역 민간업체들과 협의한 뒤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개인이 사설 구급차를 이용할 경우, 1회 요금이 보통 10~20만원대이지만 이를 7만원으로 낮추는 내용이었다. 등록한 와상장애인이 이용을 원하면 한번에 4천500원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시에서 예산으로 보조하기로 했다. 2019년 도입 당시 들어간 예산은 2천160만원에 불과했다.
현재 울산시에서 ‘와상장애인 수송사업’에 등록한 장애인은 34명이다. 이들의 이용건수는 2020년 48건, 2021년 71건, 지난해에는 166건으로 늘어났지만 울산시가 부담하는 예산은 수천만원대에 그치고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교통약자법상 침대형 휠체어에 대한 기준이 없어 이같은 방법을 마련했는데 예산 부담도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자체 차원의 의지만으로 사회적 배려계층인 와상장애인 불편을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토부의 시행규칙 개정만을 기다리는 경기지역 지자체의 자세와는 다른 모습이다. 대부분 와상장애인 현황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일보가 접촉한 지자체 관계자들은 “침대형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안전 기준이 마련되도 차량 개조나 구입비, 추가 인력이 필요하게 돼 추가 예산 부담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와 관련, 경기도소방재난본부가 여주·양평·연천 3곳에서 저소득 와상장애인의 병원 이용을 돕기 위한 119구급차 서비스 제공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구급대 인력 부족 등으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으면 확대 시행이 어려운 실정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1년 병원 이동시 구급차 이용이 필요한 와상장애인을 대상으로 교통비를 보조하는 사업을 진행하려 했지만, 대상자 숫자 파악이 되지 않아 여전히 예산추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따라서 지자체 차원의 정책 개발을 통해 와상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재원 한국인권진흥원 원장은 “그동안 수원시 등 경기도내 여러 지자체에 중증 장애인을 위한 사설 구급차 지원 제도 마련 등을 여러차례 제시했지만 검토만 하다가 무산됐다”면서 “법령이 개정될 때까지 와상장애인들은 이동에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데, 지자체가 의지만 있다면 울산시처럼 충분히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와상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진작 고민 됐어야 할 문제였지만 뒤늦게라도 헌재 판결이 나온 만큼 예산확보나 법령 미개정 등을 이유로 유보시키지 말고 즉각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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