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政治, 양평 없는 양평 싸움/郡民, 주민투표 투쟁해야

아무것이나 주민투표에 부칠 수는 없다. 주민투표법에 조건이 정해져 있다.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 주는 일이다.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반면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사항도 있다. ‘국가 사무 사항’이 대표적이다. 양평 고속도로 건설은 중대한 일이다. 양평주민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주민투표 해야 맞다. 하지만 지방 사무 아닌 국가 사무다. 국가철도망 계획으로 국가가 정했다. 사업에 투입되는 돈도 국가 예산이다. 법률상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다.

 

2020년 6월5, 6일 주목 받는 투표가 있었다. 코로나 속에 치러진 울산 북구 주민투표다. 모두 34개 투표소가 설치됐다. 5월28일과 29일 사전 투표도 진행됐다. 6월1일, 2일 온라인 투표도 있었다. 이 투표, 법률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행위다.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건설 찬반 투표’다. 원전 폐기물 사업과 관련된 국가 사무다. 그럼에도 투표는 강행됐다. 1천872명의 투표 종사원 등 3천여명이 동원됐다. 주민 5만479명이 투표했다.

 

결과는 청와대 앞으로 갔다. ‘반대 94.8%’라는 수치를 펼치고 사업 반대를 외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민투표 결과를 수용하라.’ 울산 북구 주민투표운동본부, 진보당, 탈핵시민운동, 고준위핵폐기물전국회의 등이 함께했다. 이 투표는 뒤에 ‘백서’로까지 남겨졌다. 법에 근거 없는 주민투표, 그래서 법적 구속력도 없는 주민투표, 그걸 울산 북구 주민은 치렀다. 지역 불이익에 대한 자기 의사 표현이었다. 그게 주민투표다. 지역민에게 허락된 아주 작은 투쟁.

 

빗속에서도 양평주민의 투쟁은 계속된다. 떨어진 현수막 찾아 이어 붙인다. 이 힘든 싸움의 목적은 간단하다. ‘정치는 양평 고속도로에서 빠져라’ ‘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철회하라’. 간혹 결이 다른 목소리가 있다. ‘아무개 특혜’라는 현수막이다. 순수한 주민의 목소리가 아니다. 정치하는 양평군민, 정치하려는 양평군민 구호다. 이 양평에 주민투표 얘기가 등장했다. 정치권이 서로 특혜라 비난하는 ‘원안’과 ‘수정안’이다. 주민투표로 선택하자는 주장이다.

 

훌륭한 차선(次善)이다. 지금의 정치로는 타협에 이를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김건희 로드’로 밀어붙인다. 대통령 영부인의 특혜라며 정권을 조준하고 있다.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졌다. 국정조사까지 밀고 간다고 한다. 국민의힘도 역공에 나섰다. ‘전직 군수 게이트’라 맞받아치고 있다. 김부겸 전 총리, 유영민 전 청와대 실장까지 등장시켰다. 대부분의 특혜는 실체가 없다. 아니면 말고식이다. 총선이 열 달 남았다. 열 달 끌 것 같다.

 

2025년 착공 예정이었다. 기약 없이 미뤄졌다. 2033년 완공 보게 될지 모르겠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 건 양평군민이다. 예상컨대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이 이랬을 것이다. 울산 북구 주민 속만 타 들어갔을 것이다. 그때 울산 북구는 주민 투표를 집어 들었다. 근거 없는, 효력 없지만 주민투표를 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청와대·정치권을 압박했다. 그렇게 양평에도 주민투표가 필요하다. 주민 분노를 표한 통계가 필요하다. 정치권에 던지는 여론이다.

 

정치권 반응은 시큰둥하다. 야당의 영남 중진 의원이 말했다. ‘이미 확정됐고 동의 받은 사안이다’ 진보 진영 인사가 말했다. ‘양평군민들 싸움 붙이는 나쁜 짓이다.’ 결론은 둘 다 주민투표 반대다. 말이 안 된다. 양평 고속도로 노선은 검토 상태다. 뭐가 확정됐다는 건가. 양평 지역 싸움은 정치권이 붙였다. 그 싸움 끝내자는 것이다. 진짜 주민 생각 물어보자는 것이다. 이걸 왜 반대하나.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나. 혹시 혼란 상태가 유리하다고 보나.

 

2014년, 삼척 주민투표도 있었다. 원전 유치 문제였다. 2018년, 제주 강정마을 주민투표도 있었다. 국제관함식 개최 문제였다. 앞서의 울산 북구 주민투표와 같았다. 모두 국가 사무였다. 법적 권원도 없었고, 행정 구속력도 없었다. 하지만 모아진 관심은 컸다. 표출된 뜻도 존중됐다. 출구도, 대안도, 희망도 없는 양평 고속도로 논란이다. 오로지 열 달 뒤 표 셈법만 판치는 ‘양평 없는 양평 논쟁’이다. 주민이 시작해야 할 주민투쟁은 곧 주민투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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