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탓에 흉기 휘두르고... ‘쳐다보는 게 기분 나빠서’ 폭행 경인지역 ‘묻지마 범죄’ 잇따라 불안감 확산… “대안 마련 시급” 꾸준한 층간소음 민원, 작년 경기 2만여건·인천 994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벽간소음 통계는 전무 ‘묻지마 범죄’도 마찬가지… 범죄 악순환 반복 우려
경기도민과 인천시민이 함께 생각해 조명해볼 ‘이슈M’의 8번째 주제는 ‘불안한 일상, 안전을 확보하라’다. 편히 쉬고, 거리를 걷고, 일을 하는,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 언젠가부터 위협 받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받았던 택배도, 웃는 얼굴로 마주하던 이웃도 경계하게 됐다. 위협이라 느끼지 못했던 폭우·태풍 등의 자연 현상들이 일상을 무너뜨렸고, 생계의 수단인 일자리가 생명을 걸어야 할 재해의 현장으로 변했다. 위협받는 시대, 경기도와 인천시를 넘어 대한민국의 일상이 안전하도록 일상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을 짚어보고 대책을 마련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1. 지난 30일 오전 성남시 분당구의 한 아파트에서 50대 남성 A씨가 흉기난동을 벌여 경찰에 붙잡혔다. 그가 아파트 출입문을 자신의 차량으로 가로막고 흉기를 꺼내 휘두른 이유는 ‘이삿짐 옮기는 소리가 시끄러워서’였다. 일을 하러 온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흉기로 위협받아야 했다. A씨는 흉기를 꺼내 이웃의 짐도 훼손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훼손된 건 이사 소음에 흉기를 들고 달려온 이웃과 줄곧 함께 지내야 한다는 ‘일상의 안전’이었다.
#2. 지난 23일 수원에선 만취 상태로 일면식 없는 행인 3명에게 주먹과 흉기를 휘두른 40대 남성 B씨가 붙잡혔다.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발생 이틀 만이었다. 시민들이 더욱 불안에 떨었던 건 B씨가 흉기를 휘두른 이유가 그저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기분나빠서’였기 때문이다.
#3. 지난 3월 인천 부평에 사는 C씨는 이웃을 향해 전기충격기를 휘둘렀다. 그가 이웃집에 쫓아가 전기충격기로 폭행한 이유는 층간소음 때문이었다. 순간의 분노를 이기지 못해 이웃에게 전기충격기를 들고 찾아갔던 C씨는 결국 법정에 서야 했고, 평소 터전이 됐던 집을 이사한 뒤에야 이를 참작요소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었다.
공분을 산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일상을 위협하는 범죄가 경인지역에서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일상이 위협 받게 되면서 국민 불안감이 커져 가고 있는 만큼 이를 해소할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경인지역에서는 각종 소음에 따른 보복성 범죄, 묻지마 범죄 등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지난 21일 발생한 ‘국제 우편물 대란’은 전국민이 집에 온 택배만 봐도 긴장할 정도로 극한의 공포심을 불러왔다.
생활 속 안전에 대한 위협은 호신용품 소비 상황에서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었다.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발생 다음날부터 1주일간 20~50대 전연령에서 호신용품이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기존에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호신용품은 이제 남성들도 갖춰야 할, 나 자신을 지킬 자구책으로 자리한 셈이다.
이를 두고 배상훈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들어 각종 위험요소가 곳곳에서 시민을 위협하고 있다”며 “언제, 어디서 위험에 노출될지 모르는 만큼 하루 빨리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묻지마 범죄’에 속수무책… 관련 통계도 법규도 미흡
최근 급증하는 범죄들의 특징은 지금껏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이상(異常)범죄’라는 점이다. 특히 이러한 이상범죄는 우리의 일상에 직격탄을 날리며 안전을 위협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통계는 물론 법·제도적 장치 역시 미흡한 실정이다.
이러한 범죄가 일상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정부 차원에서 이를 분석하거나 대안 마련에 나서지 않으면서 사실상 위협의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잦은 벽간소음에도, 십수년 ‘묻지마 범죄’에도…‘통계’ 조차 전무
31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층간소음을 넘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벽간소음은 관련 통계가 전무하다. 현재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이웃센터에 접수된 민원을 통해 추정하는 층간소음 통계를 벽간소음 통계로까지 활용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벽간소음을 포함한 경인지역 층간소음 민원이 해마다 수만건에 달하는 데도 상황에 맞는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3년간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이웃센터에 접수된 경기도내 층간소음(벽간소음 포함) 민원은 2020년 1만9천585건, 2021년 2만4천210건, 2022년 2만102건 등으로 꾸준하다. 인천 역시 2021년 1천301건, 2022년 994건, 올해는 6월까지만 795건에 달하며 역대 최다 민원 건수를 예고하고 있다.
층간소음 관련 대책이 쏟아졌음에도 관련 민원이 줄지 않은 건 벽간소음이라는 새로운 소음 문제가 불거져서다. 그럼에도 아직 층간소음 규제 외에 벽간소음을 규제할 제도적 장치는 전무하고, 그 사이 벽간소음에 따른 살인 등 강력범죄는 이어지고 있다.
‘묻지마 범죄’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미 수십년 전부터 묻지마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며 대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실태를 확인할 통계는 단 1번, 그마저도 국정감사에서 요구해 만든 단발성 통계가 전부다.
■ 제도 마련 하세월…"사회적 대안으로 악순환 고리 끊어야"
더 큰 문제는 이들 범죄가 ‘이상범죄’를 넘어 일상에서 빈번한 범죄가 된 뒤에도 관련 연구에 전면으로 뛰어들지 않는 것은 물론 긴급한 조치를 취할 제도적 방안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관련 범죄 자체를 ‘대비 불가 범죄’로 취급 받게 하고, 비슷한 유형의 범죄 피해라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일례로 벽간소음의 경우 최근 발생한 각종 이웃갈등 강력사건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음에도 관련법에서는 소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정부도 층간소음을 벽간소음까지 아우르는 개념으로 정의해 민원 통계 등을 관리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간극을 해소하지 않고 있다. 벽간소음에 따른 마찰을 중재하는 곳도 없고, 그 사이 벽간소음을 부추기는 불법 ‘방 쪼개기’는 성행하고 있다.
더욱이 묻지마 범죄는 오랜 기간 지속돼온 범죄임에도 이를 단순히 범죄자의 일탈, 혹은 정신이상자의 예측 불가능한 사이코패스 범죄 정도로 정의해 대비책을 두지 않고 있다. 지난해 초 경찰이 ‘묻지마 범죄’의 공식 명칭을 이상동기 범죄로 정하고도 1년 6개월의 시간이 지났지만, 정부 차원의 연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허송세월만 하고 있다.
관련 논문들은 이상동기 범죄가 사회적 양극화 또는 사회적 박탈감 등의 특성을 가지거나 개인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나 그 공격성이 사회로 표출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범죄를 분석하고, 사회 전반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만이 이상범죄를 막을 첫 걸음이라고 지목하는 이유다.
전문가 제언 “범정부 협의체 구성… 체계적 관리를”
전문가들은 범행동기가 명확하지 않거나 범행에 필연적인 이유가 없는, 이른바 ‘이상동기 범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면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사례 분석이 우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상동기는 말 그대로 원인을 파악하기 힘든 범죄를 일컫는데, 지금까지 국가는 이러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이코패스 등 성격장애를 범죄 원인으로 쉽게 대답해 왔다”며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사이코패스가 범죄 원인이라고 하면 국가는 막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이상동기 범죄라고 말하는 사건에 대한 전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승 선임연구위원은 “사리분별력과 의사 결정력이 전혀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범죄에는 동기가 있다”며 “비슷한 범죄 유형의 사람들에 대한 생애사적 연구를 통해 공통된 원인을 찾아야 정확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개별 사례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분석이 이뤄진 이후에 구체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이상동기 범죄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분석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차별이나 상대적 박탈감 등 사회적으로 분절되고 고립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억눌렸던 불만을 범죄로 표출하고 있다”며 “사회와 유대감을 가질 수 없는, 연결고리가 끊긴 사람들을 국가가 먼저 발굴해 사회 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울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불특정다수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에 대해 흥미 위주의 관심을 가지고 끝날 것이 아니라 형사사법기관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 “이상동기 범죄는 한 기관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처럼 대통령 직속 산하 위원회를 두고 경찰과 복지부, 지자체 등 관계기관이 참여한 범정부 협의체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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