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인 2만7천명 사는데 지역 내 34명뿐 어려운 의학 용어 ‘필담’으로는 소통 한계 병원 측 “수요 적어 상근직 채용 어려움”
“아픈 것보다 소통이 어렵다는 두려움이 커요.”
인천 남동구에 거주하는 농아인 조애란씨(55)는 얼마 전 인천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폐암 수술을 했다. 수술이 끝난 뒤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궁금한 점을 묻고 싶었지만 병원에 수어통역사가 없어 물어볼 수 없었다. 의사가 아침 회진을 돌 때, 간호사가 방문했을 때도 의학 용어가 워낙 어렵다 보니 스케치북을 이용한 필담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조씨는 “입원을 하면 수어통역센터의 수어통역사가 24시간 함께 있어주지 못하고, 이른 시간에 도는 아침 회진에 참여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큰 수술을 치르는 상급종합병원에는 상근 수어통역사가 근무해야 한다”고 했다.
미추홀구에 거주하는 농아인 30대 김모씨는 최근 급하게 예약을 잡아 혼자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했다. 의사가 종이에 적어 김씨에게 병명을 설명해줬지만, 용어가 어려워 이해하지 못했다. 며칠 뒤 수어통역사와 함께 방문했더니 의사로부터 “지난번에 다 설명했다”는 말만 들었다. 김씨는 “병에 관해서도, 병원 안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다음 방문은 언제인지도 혼자서는 알아듣기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인천지역 상급종합병원 3곳 모두 의료 전담 수어통역사가 없어 인천지역 농아인들이 병원 이용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
21일 인천농아인협회 등에 따르면 인천지역 상급종합병원인 인하대병원,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가천대 길병원에는 농아인들의 의사소통을 돕는 수어통역사가 1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울은 연세대병원에 수어통역사 1명, 고려대 안암병원에 2명 배치했다. 부산은 성모병원에 수어통역사 2명을 고용했다.
인천지역 농아인들은 병원을 이용하려면 수어통역센터를 통해 수어통역사와 약속을 잡고, 동행해야 한다. 하지만 인천에는 수어통역사 수가 적어 예약을 잡기 쉽지 않다. 인천 거주 농아인은 2만7천217명, 반면 수어통역사는 34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이중 4명은 육아휴직 중이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볍률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장애인의 특성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처벌조항이 없어 유명무실하다. 이 때문인지 인천 상급종합병원 3곳은 수어통역사를 고용하기 위한 계획조차 없다.
서원선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위원은 “병원에서는 의학적인 용어를 통역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춘 수어통역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이 수어통역사를 고용해야 하는 법적 근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하대병원 관계자는 “현재 농아인 환자에 대한 수요가 적어 상근 수어통역사를 채용하기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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