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이면 길거리에 노란색 은행잎이 수북하다. 바람이라도 불면 은행잎이 나뒹굴며 흩날리는 모습이 운치 있다. 오래된 은행나무 아래에는 노란융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때때로 아이들이 낙엽을 한 움큼씩 집어들고 흩뿌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올해는 노란색 은행잎 보기가 어렵다. 잎이 노랗게 물들기 전에 우수수 떨어져 버렸다. 초록빛으로 내려앉은 은행나무 잎들을 보니 어색하고, 뭔가 잘못돼 가고 있음을 느낀다.
은행나무뿐 아니라 다른 나무들의 가을도 비슷하다. 절정도 없이 잎파리들이 떨어졌다. 근처 산책길만 걸어도 화려했던 단풍이, 붉지도 노랗지도 않은 채 낙엽이 됐다. ‘초록색 낙엽’이다.
단풍은 기상 요인에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대표적인 자연 현상이다. 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며 일사량이 많을 때 물든다. 우리나라 단풍이 곱고 예뻤던 건, 11월 늦가을 날씨가 서늘하고 대체로 맑은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11월은 날씨가 덥거나 춥고, 비도 많이 오는 등 평년보다 변화무쌍했다. 11월 초 갑자기 기온이 크게 올라 단풍이 미처 물들지 못한 채 말라 버렸다. 지난 2일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은 18.7도, 낮 최고 기온도 25.9도로 초여름 날씨였다. 11월 기온으로 1907년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이후 한파가 닥쳐 바람이 불면서 파랗게 마른 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버렸다.
우려했던 기후변화 탓이다. 기후변화의 특징인 극단적 기온 변화가 11월 한 달간 나타났다. 앞으로도 울긋불긋한 단풍의 향연을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은 식물뿐 아니라 곤충 등 생태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요즘 모기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한반도는 100년 전 대비 2도 정도 온도가 상승했다. 그 영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 9위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후위기에 안일하다. 일회용품 금지 철회 등 환경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