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있어야 노동 있고 기업 살아야 근로자 산다’, ‘대책은 나 몰라라, 사고 나면 일벌백계’, ‘벼랑 끝 건설업계 중처법에 죽어난다’. 14일 수원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결의대회에 중소건설인과 중소기업인 4천여명이 모여 이런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중대재해 불안감에 경영 의욕 사라진다”, “산재 예방 잘할 테니 사장 처벌 없애달라” 등의 구호도 외쳤다.
이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의 유예다. 한 차례 유예했는데 2년 더 유예해 달라는 것이다. 80만여 중소·영세기업은 준비가 덜돼 폐업, 도산, 해고의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회사가 안전의무를 소홀히 해 노동자가 숨질 경우 경영책임자인 사업주를 무겁게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 사고 후 2년 만인 2021년 제정됐다. 법은 2022년 1월27일 50인 이상 사업장(건설업은 공사 금액 50억원 이상)부터 적용됐고,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2년간 유예 뒤 시행하기로 했다.
예정대로라면 50인 미만 사업장도 지난달부터 법이 적용돼야 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지난해 9월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시행을 한번 더 유예 방침을 정했고, 국민의힘이 ‘2년 추가 유예’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야당 반대로 1월에 국회 통과가 무산된 법안은 오는 29일 본회의에서 결정된다.
중소기업계는 법 시행에 무방비 상태라고 하소연한다. 경총이 작년 말 1천53곳을 실태조사 했는데 적용 시한까지 이행이 어렵다는 기업이 87%였다. 전문인력이 없어서(41%), 의무 내용이 너무 많아서(23%) 등이 이유였다. 정부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적이 없다는 기업도 82%나 됐다.
사업주들은 중대재해법의 애매모호하고 과도한 처벌 규정 탓에 범법자로 내몰릴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준비 부족과 무리한 법 시행으로 영세 사업장이 폐업에 이르면, 결국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야당은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추가 유예 법안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정부가 중소·영세 기업들의 준비 상황을 체크하면서 미비·보완점을 찾아 안착할 수 있게 지원하지 않은 건 문제다. 2022년 산재 사고 사망자 874명 중 707명(80.9%)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다. 이런 상황이면 2년 더 유예한다고 달라질 게 없다. 정부는 취약 기업에 기술과 시설을 지원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와 같은 재해예방 인프라 구축에 도움을 줘야 한다. 업계도 노동자 안전을 위해 조직을 정비하고 투자를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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