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의료 대란과 관련해 ‘지난 정부’를 언급했다. “지난 정부처럼 (그냥) 지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해졌다. 의료계 집단 행동에 대한 정부 의지를 밝힌 대목이다. 정부의 의지를 강조한 설명으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총선을 감안할 때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때마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총선 음모론’을 제기했다. ‘2천명 증원’에 고의적인 총선 쟁점화 의도가 엿보인다는 취지다. 의료 대란이 어느새 총선판에 들어왔음이다.
윤 대통령은 19일 의료계 집단행동과 관련된 보고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의료계는 국민을 이길 수 없다”고 밝혔다고 전해졌다. 의료계 일각에서 나오는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지적에 반박한 발언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또 “의료는 국민 생명과 건강의 관점에서 국방이나 치안과 다름없이 위중한 문제”라고도 강조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현안 발언이 하루 뒤늦게 전해지는 게 통상적이지는 않다. 대통령실 판단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의료대란에 정부가 ‘한발 물러섰던 역사’는 있다. 2014년 원격의료 도입 철회, 2020년 의대 증원 무산 등이 그런 예다. 2014년은 박근혜 정부였고, 2020년은 문재인 정부였다. 2020년 의대 정원 무산은 현재 처한 갈등 현안과 똑같다. 결국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를 선언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최근 여론의 흐름을 통해 얻은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대통령·여당 지지율이 상승한 최근 흐름과 의료 대혼란이 시기적으로 겹친다.
긴장감을 더 가속화시킨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의료 대란 음모론을 제기했다. 의료계가 수용 못할 요구를 던지고, 혼란과 반발을 극대화하고, 누군가 나서 원만한 타협을 이뤄낸다는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2천명 증원을 무리한 요구라고 전제한 설명이다. 이 발언 역시 최고위에서 작정하고 던진 정황이 짙다. 주장된 음모의 주체를 국민의힘이 아닌 정책 라인의 최상부, 즉 대통령실로 겨냥하고 있음이 그렇다.
의대 증원에 대한 여론은 예민하다. 한국갤럽의 2월 셋째 주 조사 결과가 있다. 거기서 여론을 물었다. 의대 증원에 ‘긍정적’이라는 답변이 76%였다. 부정적이라는 답은 16%에 불과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의 최홍태 연구원도 “의료대란으로 인한 여론 변화 가능성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병원 파업이 본격화된 오늘, 모든 총선 화두마저 수면 아래로 밀려났다. 의료 대란이 총선 중심에 들어와 판을 흔들기 시작했음을 증명한다.
이 판의 특별한 점이 있다. 좌우할 권한이 일방에만 있다. 정부 여당만이 흔들 수 있다. 잘 대처해 흥하는 쪽은 정부 여당이다. 잘 못 대처해 망하는 쪽도 정부 여당이다. 국민 생명이 걸린 일이다. 결말까지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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