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농악 ‘시흥시 향토무형유산’으로 지난해말 지정 ‘변하지 않으면 전승은 없다’ 절박함으로 전승 이어가
“한국인이라면 농악 소리에 어깨춤이 절로 나오질 않습니까. 시흥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인 시흥월미농악을 더 많은 사람이 흥겹게 즐기고 익힐 수 있도록 올해 부지런히 뛰어볼 요량입니다.”
지난해 12월 말, 경기도 시흥을 대표하는 농악인 월미농악이 ‘시흥시 향토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월미농악 계승 단체로 인정된 ‘시흥월미농악보존회’의 수년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값진 결실의 중심에는 시흥월미농악보존회의 제3대 회장인 박상용(67) 회장이 있다.
박 회장은 “시흥 토박이로 자라나 어린 시절부터 접했던 월미농악이 시흥시 최초로 향토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감개무량하다. 월미농악 계승을 위해 항상 열정을 보여준 단원들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한국인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농악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행해지는 가장 대표적인 민족 전통예술이다.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했던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농악은 우리 삶에 늘 함께하며 마을 공동체를 더욱 단단하게 묶어주고 마을의 생활과 노동의 문화 속에서 꽃피운 삶의 소리를 담아냈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풍물인 시흥월미농악은 시흥시 물왕동의 월미마을에서 성행했는데, 농민의 삶과 애환을 담아 위로를 전한 시흥월미농악은 짜임새 있는 편제와 예술성으로 시흥에서 가장 뛰어난 풍물패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악이 설 자리는 점점 작아졌고, 박 회장을 비롯해 농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전통의 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절실함과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지난 2007년 ‘시흥월미농악보존회’를 설립했다.
보존회 설립 당시 부회장직을 맡으며 누구보다 농악 전승과 보전에 열성적이었던 박 회장은 ‘변하지 않으면 전승은 없다’라는 절박함으로 단원들과 합을 맞추며 흥과 멋을 유지하되 요즘 시대에 맞게 농악을 변화시키며 대중화를 꾀하는 데 앞장섰다.
농악의 정체성을 지켜가기 위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은 보존회는 2009년 전북 김제지평선축제 전국 농악경연 대상, 2010년 경기 평택 지영희국악대제전 전국 농악경연 대상 등 전국 단위의 굵직한 수상 경력과 교류 실적을 보유하는 데 이르렀다.
박 회장은 농악에 대한 진심과 치열함으로 열정을 쏟는 단원들의 노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충분한 월미농악을 후대로 전승해 명맥을 잇고자 단원들과 함께 수년간 고증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수많은 시간과 정성으로 시흥월미농악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시흥시는 이를 무형유산으로 지정, 보호하기로 했다.
그는 “시흥월미농악이 다음 세대로 전승되어 생명력을 가질 때 비로소 가치를 발휘하는 것처럼 젊은 세대에게 전달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농악 소리에 어깨 들썩이는 MZ세대를 보고싶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통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하며 시흥월미농악의 계보를 이을 후배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이 시흥월미농악을 쉽게 이해하고, 나아가 무형유산으로서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느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풍성한 공연을 선보이는 데 노력하고 있다. 삶의 다양한 순간에서 농악이 위로와 희망을 전할 수 있다면 매우 가치 있는 일일 거라는 생각에서다.
본인도 스스로 직접 농악을 배우며 꾸준히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박 회장은 앞으로 농악을 모내기나 김매기, 추수 등 공동체 생활풍습과 접목한 민속예술로서 다채로운 면면을 시민들에게 선보일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이어나가겠다는 다짐을 들려줬다. 아울러, 올해는 시흥월미농악이 경기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보폭을 넓힐 계획이다.
박 회장은 “시흥 지역의 얼과 혼, 멋과 흥이 스며있는 소중한 시흥월미농악이 ‘향토무형유산’이라는 이름을 달고 전 세계로 더 멀리 날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자신감 있게 더 나아가보겠다”고 말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