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섭 논설위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다. 모든 직업은 가치가 있고, 직업만으로 사람의 귀하고 천함을 논할 수 없다는 얘기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직업에 대한 귀천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직업에 대한 귀천이라기보다, 직업에 대해 귀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의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연구원은 대표적 15개 직업에 대해 5점 척도로 우리 사회에서 갖는 사회적 지위를 평가했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은 직업으로 국회의원을 꼽았다. 일본도 국회의원이 1위였다. 반면 미국과 독일에선 소방관이 1위였다.
한국에서 국회의원의 사회적 지위는 5점 만점에 4.16점이었다. 이어 약사(3.83점), 인공지능전문가(3.67점), 소프트웨어개발자(3.58점)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하위 5개 직업으로는 소방관(3.08점), 사회복지사(2.54점), 공장근로자(2.19점), 음식점종업원(2.02점), 건설일용근로자(1.86점)가 꼽혔다. 연구진은 “육체적·정서적 어려움을 수반하지만 보상은 높지 않은 직업이 하위권”이라고 분석했다.
조사는 일본·중국·미국·독일에서도 동일 방식으로 진행됐다. 눈에 띄는 것은 국회의원과 소방관의 순위다. 국회의원은 동양권인 일본·중국에서도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은 직업으로 뽑혔지만 미국은 12위, 독일은 10위로 중하위권이었다. 반면 미국·독일에선 소방관이 1위였다. 한국은 11위였고 중국은 9위였다. 소방관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해 희생하는 직업임에도 우리나라에선 열악한 처우에 시달린다. 학생 희망직업 조사에서도 소방관은 초·중·고교생 선호 직업 20위 안에 들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직업별 점수 격차가 크다는 것도 주목된다. 1위 국회의원과 최하위 건설일용근로자의 격차가 2.30점에 달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는 1위와 15위의 격차가 각각 0.92점, 0.93점이었다.
한국에서 직업 귀천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사회통합을 저해한다. 경제·사회적 필요성이나 기여에 비해 대우받지 못하는 직종에 대한 보상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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