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난민을 위해…미얀마서 10년 가까이 봉사하고 있는 박강호씨

박강호씨
태국 미얀마 국경 메솟에 있는 난민병원 ‘메타오크리닉’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는 박강호씨. 본인 제공

 

“보수는 물론 필요한 의료용품 등을 손수 마련해야 하지만, 난민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상황을 목격하고 그들을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30년이 넘도록 안산시에서 공직생활을 하다, 현재 퇴직 후 태국 미얀마 국경 매솟에 있는 난민병원 ‘메타오크리닉’에서 자신의 연금을 생활비로 충당하며 생활하는 이가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안산시에서 오랜 기간 환경 관련 업무를 담당하다 지난 2014년 안산시환경재단 본부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떠난 박강호(69)씨다.

 

그가 아무런 연고가 없는 태국의 국경 지역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안산시에서 21세기 위원으로 활동하다 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허춘중 목사의 소개로 메타오크리닉 병원을 방문하면서다.

 

병원 방문 당시 신시아 병원장의 “도와달라“는 간절한 그 한마디에 거절하지 못한 채 10년 가까이 이곳에서 난민들의 아픈 곳을 치료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55년 양평에서 태어난 그는 작은 의원을 경영하며 환자들을 돌보던 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한의대에 도전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했고 공직 생활을 하면서도 한의사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1999년 돌연 미국 내에서도 꽤 알려진 동양의학대학인 ‘Southbaylo’ 한의학대학에 3년 기간의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그의 나이 47세.

 

가족 및 지인 등 주변의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그는 지금 “일생을 살며 가장 잘한 결정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고 있으며, 인생 2막을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보람있게 잘 보낼 수 있게 시간 이였다”고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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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미얀마 소녀를 보살피고 챙기는 박강호씨 모습. 본인 제공

 

그도 그럴 것이 그는 1990년대 우리나라의 큰 사회문제로 대두됐던 시화호의 수질 문제를 갈대습지공원과 시화조력발전소건설 등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끈질긴 추진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가 미얀마 국경에서 난민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안산 3750로터리클럽과 안산의료사업협동조합, 안산시청 신우회 등지에서 크리닉을 보수하고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침뜸 구입비 그리고 스텝을 교육할 수 있는 경비를 아무런 조건 없이 꾸준히 지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10년 가까운 이곳 메타오크리닉에서의 생활은 난민들에게 많은 생각의 변화를 줬을 뿐 아니라 그들을 치료하는 동안 그들이 보여준 해맑고 선한 웃음은 이곳에서 버틸 수 있었던 버팀목이였고, 그로 인해 그들 곁을 쉽게 떠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며 그곳에서 느끼고 있는 속내를 털어 놨다.

 

이어 “그동안 3만5천여명 가량을 치료했다”는 그는 “거리가 멀어 크리닉에 찾아올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해 난민촌 2곳에 한방크리닉을 오픈 운영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한국의 문화가 주목을 받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K-팝과 화장품, 드라마, 음식에 이어 소설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끌고 있고 앞으로 K-한방시대가 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그를 ‘나부까 닥터’라고 부른다. 나데, 부데, 까운데. 즉, 아픈 자리에 뜸을 하니 정말 좋네”라는 뜻이라고.

 

앞으로 그는 “배고프고, 목마르고, 집 없이 헐벗고, 병들고 갇힌 이 세상의 작은 난민들을 우리 한의학을 통해 사랑을 전하고 싶다”며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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