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국인 갈등 줄이기… 언어장벽 극복 최일선
옛 소련 시절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한 고려인들이 귀국해 모여 사는 곳. 바로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이다. 이젠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등을 비롯해 모두 10여개국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이 때문에 마을 거리에는 온통 읽기도 힘든 언어로 쓴 간판들이 가득하고, 곳곳에서 낯선 언어가 들리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이 때문에 함박마을에서의 내·외국인 간 갈등은 심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문제는 대부분 언어 차이로 시작하고, 언어장벽에 가로막혀 내국인과 외국인이 서로 가까워지지 못하다 보니 갈등은 심화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우리’로, 지역사회는 어느 한쪽의 이해와 포용을 기다리기보다는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며 서로 배려, 함께 성장 중이다. 편집자주
■ 절반이 넘는 외국인 주민 마을
함박마을은 함씨와 박씨가 많이 살아 붙은 이름이지만 이제 고려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함박마을은 1만8천여명 중 외국인은 1만600여명에 이른다. 이처럼 함박마을은 외국인 주민 비율이 절반을 넘어가다 보니 본격적인 다문화 시대로 접어든 우리나라의 미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함박마을에서의 내·외국인 간 갈등은 심했다. 내국인들은 지자체에 “외국인들이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며 범죄 우려에 따른 영업 손실 보상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이 일대 범죄 통계를 분석한 결과 이 지역에서 일어난 전체 범죄 가운데 외국인이 저지른 범죄는 5% 미만에 그친다.
인천 연수구를 비롯해 지역사회 등은 함박마을의 내·외국인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 언어 장벽을 우선 극복해야 한다고 보고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이미 고려인 2세들은 이곳에서 내국인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는데 알맞은 시스템 부재로, 언어 장벽을 좀처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이곳 주민들은 내·외국인 간 갈등을 배우며 자라는 셈이다.
■ 학교 수업 변화의 바람
올해 기준 인근 함박초등학교 학생 중 이주민 비율은 60%에 이른다. 하지만 외국인 학생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이나 교과 수업 설명이 가능한 교사는 거의 없다. 이런데도 이곳 교사들은 더디지만 통역 애플리케이션(앱)을 수업에 활용하기 시작했고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는 조금씩 오르고 있다.
외국인 학생이 수업을 이해하지 못해 모국어로 질문하면, 교사들은 잠깐 수업을 멈추고 통역 앱을 통해 질문을 이해한 뒤 답변을 한다. 분명 속도는 느리지만 이제는 내·외국인 학생 모두 오히려 신기해하며 수업에 참여한다.
함박초 교사 A씨는 “통역 앱을 활용하기 전에는 외국인 친구들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거나 수업 참여를 잘 안했다”며 “앱을 활용하기 시작했더니 아이들이 신기하고 재밌는지 수업에 참여하고 발표도 하려 한다”고 말했다.
함박초는 또 학부모들에게 학생들 학업 성취도를 포함한 원활한 알림을 위해 ‘초롱이 모바일 앱’을 개발, 알림장 번역 서비스를 지원하며 학교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언어로 번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5억2천만원을 들여 담임교사 외에도 통역사를 통한 협력교사 제도를 마련, 1~3학년생들에게는 협력강사가 수업에 참여한다. 교사가 한국어로 수업을 하면 통역사는 러시아어로 설명하며 수업을 돕는다. 교무실에는 통번역사 3명이 교대로 근무하는데 이들은 학교에서 보내는 안내장을 번역하거나 학부모들의 문의를 번역해 학교 측에 전달한다.
■ 마을 새단장... 정주여건 강화
인천시 역시 다문화 시대에 대비, 여러 가지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시는 2025년 함박마을 새단장에 나선다. 재외동포청 유치에 따라 국내 재외동포들의 정주여건을 강화하고자 함이다.
시는 다문화가정 정주지원과 함께 외국인 주민들을 위한 소통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도시재생사업도 한다. 생활환경 개선과 함께 마을 중앙의 마리공원을 활용, 지역특화 상징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시는 12만1천600㎡(3만6천800평)에 240억2천700만원을 들여 외국인 종합지원센터와 공동체 생활공간 등을 만든다. 지난 2023년 ‘다가치세움소’라는 육아돌봄 공동체 생활공간을 마련했다. 이후 시는 오는 2025년까지 주민 커뮤니티 공간인 ‘고려인과 함께하는 상생교류소’를 만들 계획이다. 시는 이곳에 회의실과 스터디룸 등 다목적 공간을 마련, 내·외국인 청소년들이 함께 생활하며 어우러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계획이다. 또 외국인 생활상담과 정보지원에도 나선다.
시 관계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과 재외동포들이 살고 있는 함박마을에서는 음식과 문화 등 다양성을 즐길 수 있다”며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함박마을 주민들 간의 소통과 화합을 이끌어 내겠다”고 했다.
■ 연수구, 다양한 주민 화합 지원
연수구는 함박마을을 담당하는 연수1동 행정복지센터에 러시아어 가능자를 민원창구에 배치했다. 가족관계증명서, 외국인등록 사실 증명서 등 생활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뗄 때 통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 1~3월 기준, 외국인 민원 건수만 3천190건에 이르기 때문이다.
구는 이 밖에 전국 최초로 사회통합 조례를 제정, 내·외국인 사회통합을 위한 구청장의 책무 및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조례는 정책 발굴 제도 개선이나 민관 협조관계 구축 등 사회통합에 관한 사항, 이 밖에 정책홍보나 내·외국인 주민들 구정 참여 독려를 위한 서포터스 운영에 관한 사항을 포함한다.
또 구는 홈페이지에 구글 언어 번역 창을 공지사항에 띄워 러시아어, 베트남어, 우즈베크어, 몽골어 등 다양한 언어로 통역이나 전환할 수 있는 창을 만들어 외국인 주민 편의를 돕는다. 특히 구는 지난 2024년 내·외국인 사회통합 서포터스를 공개 모집했다. 이들은 연수구 사회통합 정책을 홍보하거나 사회통합 구정 행사나 캠페인에 참여한다. 초반 저조한 외국인 참여에 구는 고려인 단체에 협조를 요청, 예산을 따로 들여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 경찰, 안전한 마을 만들기... 범죄 우려 불식
인천 연수경찰서는 함박마을 내국인들의 범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안전한 함박마을 만들기에 나섰다. 경찰은 연수구, 자율방범대와 함께 주기적인 민·관·경 합동 켐페인을 벌여 함박마을 치안을 유지한다. 특히 다른 지구대에 비해 함박마을을 관할하는 연수지구대에 더 많은 경찰력을 배치했다.
이뿐만 아니라 연수서는 함박마을에서 범죄예방 캠페인, 취약시간대 순찰 활동 강화, 외국인자율방범대 합동 순찰 정례화, 외국인 학생 대상 범죄예방 홍보 등 다양한 범죄예방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함박마을을 비롯한 다문화 시대를 맞아 ‘나보다 우리’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손정진 너머인천고려인문화원 대표는 “이주민들이 많은 독일은 정부가 많은 예산을 투입, 단순히 언어뿐만 아니라 사회에 이주민들이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함박마을 역시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이해를 기대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손 대표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려는 통합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마을 축제와 같이 함께할 수 있는 여러 행사를 공유하고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 일에 대해서도 협력하며 서로 언어와 문화, 사회와 관련된 교육을 공동으로 받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