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1만여점의 국가유산이 있다. 그중 7천441개가 경기도에 있다. 17개 시·도 가운데 여섯 번째로 많다. 행정의 관리 능력이 도저히 따를 수 없다. 그래서 만들어진 제도가 국가유산지킴이다. 국가유산청이 2005년 처음 도입했다. 인력·행정의 한계를 지원하는 역할이다. 9시간의 온라인 교육 이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번 위촉받으면 4년간 자격이 유지된다. 현재 도에서 활동하는 지킴이는 2천100명이다.
일반인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당사자들의 자부심은 어느 직함 못지않다. 유산의 보수, 보전, 관리에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황당한 일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수원화성에서 대치 상황이 있었다. 국가유산지킴이 20여명을 관리사업소가 막아선 것이다. 하남시의 한 향교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있었다. 향교 유림들의 반대로 지킴이 40명이 발걸음을 돌렸다. 아주 흔한 모습이다.
‘너무 민망했다’는 한 지킴이의 술회가 이해된다. 국가유산청이 교육까지 시키며 위촉한 요원들이다. 국가·지방 지정 유산, 비지정 유산을 관리하라며 책임까지 줬다. 그들 사비로 청소 도구, 보수 장비, 홍보용 리플릿 등을 마련한다. 이런 지킴이들이 현장에서는 봉변을 당하고 쫓겨난다. 정확히 말하면 행정 기관이 막아서는 것이다. 문제의 출발은 간단하다. 엉성한 제도다. 역할만 부여하고 권한은 주지 않은 제도가 문제다.
국가유산청은 그야말로 위촉만 했다. 이를 구체화할 근거를 마련하지 않았다. 지자체가 알아서 권위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이렇다 보니 이제는 지킴이 지원자도 급감하고 있다. 신규 위촉자가 2021년 531명, 2022년 347명, 2023년 182명, 2024년(10월 현재) 59명이다. 위촉됐던 지킴이들도 떠나고 있다. 재위촉자가 2020년 1천869명에서 2022년 1천256명으로 줄었다. 남아 있는 2천100명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경기도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2023년 ‘경기도 국가유산지킴이 활동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2024년 5월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조례 제5조에 지원의 근거도 부여하고 있다. ‘도지사는 국가유산지킴이 활동에 필요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 제8조에 포상 근거도 마련해 놨다. ‘공로가 있다고 인정되는 단체, 개인 등에 대하여 포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구체성을 획정하는 데 모호한 측면이 있었다.
때마침 경기도의회가 이런 문제를 보완할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점은 다행이다. 국가 유산 관련 기관의 업무 보조, 순찰 및 감시 활동, 용역 수행 등 활동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유산지킴이들의 자부심을 고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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