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허덕이는 홈플러스, 또 대출…기존 채권자들 변제순위 뒤로 밀리나

최근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으로 임직원 및 협력업체에 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16일 지난달 서울의 한 홈플러스 매장 앞으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으로 임직원 및 협력업체에 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16일 지난달 서울의 한 홈플러스 매장 앞으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홈플러스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과정에서 또다시 600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으며 논란이 일었다.

 

이미 MBK의 차입매수(LBO) 여파로 10년 가까이 과중한 부채에 시달려온 홈플러스가 이번에는 또 다른 사모펀드로부터 고금리 자금을 조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무 건전성 회복’이라는 기업회생 취지를 스스로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대출이 최우선 변제 대상인 ‘공익채권’으로 분류되면서 기존 채권자들의 손실 우려는 한층 커지고 있다.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최근 사모펀드 운용사인 큐리어스파트너스에서 600억원 규모의 DIP(Debtor-In-Possession) 파이낸싱 대출을 받기로 했다. 대출 금리는 연 10%, 만기는 3년이다. 대출금은 홈플러스 매장에 입점한 소상공인들에게 정산대금을 지급하는 데 쓰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정관리 중인 기업이 또다시 고금리 빚을 내는 것이 과연 정당한지에 대해선 금융권 안팎에서 비판이 제기된다. 앞서 MBK는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전체 거래금액 7조2천억원 중 절반이 넘는 4조3천억원을 홈플러스 명의의 차입금 등으로 조달했다. 이후 홈플러스는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차입금 부담을 줄이지 못했고, 결국 최근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용평가사들도 홈플러스의 재무 위험을 잇따라 경고해왔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2월 말 홈플러스의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점포 매각으로 차입금을 줄이는 전략은 일정 효과가 있었지만, 최근 매각 규모가 줄면서 다시 차입금이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밝혔다. 실제로 작년 11월 말 기준 홈플러스의 순차입금은 5조3천12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천194억원 늘었고, 부채비율은 1천400%를 넘어섰다.

 

이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 고금리 대출을 또다시 끌어온 건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기업회생제도의 근본 취지를 퇴색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이번 대출이 DIP 형태로 이뤄지면서 공익채권으로 분류돼 기존 채권자들보다 우선해 변제된다는 점도 논란의 핵심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공익채권은 말 그대로 회생기업의 존속에 필수적인 자금이기 때문에 최우선 변제 대상이 되는데, 큐리어스에서 받은 이 대출 역시 같은 취지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럴 경우 기존 금융기관의 회수 순위는 한 단계 밀려나 손실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홈플러스에 1조2천억원의 선순위 대출을 해준 메리츠금융그룹, 1천억원 이상을 빌려준 KB국민·신한·우리은행 등 채권단 내부에선 불만이 감지되고 있다. 회생채권 중에서도 순위가 밀릴 수밖에 없는 유동화 전단채(ABSTB) 투자자들의 반발은 더 거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홈플러스가 발행한 ABSTB의 잔액은 4천19억원이며 이 중 1천777억원이 개인투자자 몫이다. 회생절차상 공익채권, 회생담보권에 이어 상거래·금융채권 순으로 변제가 이뤄지는 구조상, 전단채 투자자들의 손실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에선 이 채권의 상환이 최장 10년에 걸쳐 분할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한편 이날 홈플러스 전단채 피해자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서울중앙지검에 MBK 김병주 회장과 홈플러스 김광일 공동대표를 고소했다. 이들은 “DIP 파이낸싱 채권은 공익채권으로 분류돼 기존 채권보다 먼저 변제되며, 어떤 경우에도 김병주 회장의 원금은 손실이 나지 않는 구조”라며 강력 반발했다.

 

업계에선 “MBK가 진정으로 홈플러스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부채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대규모 사재 출연 등 책임 있는 자본 확충 방안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업 회생의 명분 아래 또 다른 사모펀드에서 고금리 자금을 끌어오는 ‘미봉책’으로는 채권단의 신뢰 회복은커녕 손실만 키울 뿐이라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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