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푸른 제복의 공직자

양휘모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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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를 든 범인을 만났을 때 효과적인 호신술로 소개되는 기술이 있다. ‘기회를 포착해 신속히 도망가는 것’.

 

이런 돌발적이고 경악할 만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위에서 제시한 호신술(?)과 정반대로 날카로운 흉기와 맞서야 하는 직업군이 있다. 바로 푸른 제복의 공직자 ‘경찰’이다.

 

지난 22일 오후 9시50분께 파주시 한 아파트에서 가정폭력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3명이 40대 남성으로부터 흉기 피습을 당했다.

 

조사 결과 중상을 입은 경찰관 2명이 방검복 등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현장으로 출동한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이들 경찰관이 본능적으로 위험을 인식하고 상황을 회피했다면? 2021년 인천 남동구 빌라에서 층간소음으로 인해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현장. 혈흔이 낭자한 범행 장면을 목격한 여경이 도망쳐 계단 아래로 피신했다. 현장으로 향하던 남경도 여경을 보고 발걸음을 돌려 함께 빌라를 빠져나갔다.

 

이후 이들은 사회적 지탄을 받은 뒤 해임됐고 형사재판에서도 실형이 선고됐다.

 

다시 파주 흉기 사건과 관련, 경찰 고위 관계자의 “출동 지령에 안전장구 착용 지시가 있었으나 출동 경찰들은 착용하지 않았다”고 언급한 발언이 보도되면서 경찰 내부에선 지휘부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위급한 신고 상황에 방검복을 다 챙겨가지 못한 현장 경찰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 등에선 “권한은 지휘부에 있고, 책임은 현장에만 있느냐”는 볼멘소리도 이어졌다.

‘본인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위해와 불법과 불의에 대결하며....’

 

경찰의 복무선서 중 일부 내용이다.

 

심각한 인력난 속에서 최소한의 안전 확보를 위해 명시된 매뉴얼 규정조차 지키지 못한 채 참사의 현장으로 달려나가는 경찰들. 이들이 공직에 발을 들여놓았을 당시 다짐하고 외쳤던 선서가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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